검색
고미술 이야기

(51) 메트르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 1890-1981)는 근대 지식인으로 교육자이자 철학자이다. 요즈음 동양학과 인문학이 무슨 운동선수 이름처럼 마구 불러지는 세상에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도덕적이고 건강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던, 참으로 조선의 선비에다 서양 철학자 칸트와 같은 행동 규범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당신 스스로 너무나 철두철미한 삶을 살았던 그런 분이었다.

다석 선생은 생각이 양의 동서를 마음대로 넘나들었고 어려서 한학을 기본으로 익힌 연후에 한글연구에도 힘을 써서 원초적인 한글, 즉 훈민정음 초기의 어법을 마음대로 구사해 일기와 글을 썼고,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의 영향를 받아 기독 성경연구를 독자적으로 한 근대의 유, 불, 선, 기독의 통섭적 경향의 사상을 일원화해 살았던, 더군다나 그 생각이 남을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거나 피해를 준 적이 없고, 삶에서 항상 남의 모범이 되었던 분이다. 헌데 이분이 이런 분인 줄만 알지 천문학(天文學)연구에 깊이 천착했고, 아울러 수학(數學)에 조예가 깊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연보에 보면 1912년에 동경에 가서 동경물리학교에 다닌 기록이 있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겠지만 자세히 아는 사람은 오산학교(五山學校)에서 직접 배운 제자나 집안사람들 뿐 일 것이다.

필자는 1970년대 후반에 함석헌(咸錫憲: 1901-1989)선생의 노자(老子)강의에서 우연히 스승이신 다석 선생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 수학과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하시면서 1929년쯤인가에 메터법에 관한 책을 낸 적이 있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그런가 하고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쯤인가 청계천의 어떤 서점에서 잡다한 책을 가지고 하는 작은 경매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아무런 기대 없이 무심코 앉아 있다가 유영모 선생의 이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책이름은 "度量衡新制 메트르要領" 그 밑에는 '柳永模 編述'이라 되어있고, 가로 15,2, 세로 10,7센티 크기였다. 함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 책의 주인공이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으로 알았을 것이다.

이 책은 겉표지를 넘기면 '킬로그람 原器(實物大)'의 사진이 있고, 目次, 序說, 그리고 上編은 '메트르制'란 큰 제목 밑에 1. 메트르制의 來歷, 2. 먼저 記憶할 八箇單語, 3. 度量衡의 名稱, 略字, 命位及用途, 4. 度量衡令에 依한 計量單位의 倍數 及 分數名稱 5. 水道 電氣 瓦斯 等 메트르 計量器의 讀法, 6. 自然界와 메트르, 7. 메트르制의 實際化로 되어 있다. 그리고 下編에는 '換算에 對하여'란 큰 제목 밑에 1. 大綱 대중만 알랴는데(速算法), 2. 新舊單位의 互相對値를 別方法으로 記憶하기, 3, 精密한 換算을 要하는 때를 爲하여(算式), 4. 重要한 比率을 記憶하기(斷片寓話로), 5. 溫度의 換算. 끝에는 부록으로 '換算表'가 붙어있다. 57쪽의 얇은 책으로 소화(昭和)3년(1928) 2월 7일, 개성사(開成社)에서 출판했다.

"世上널린 자벌레가 가지數도 하도만허/ 제各其들 밤낫재도 그길이를 대중못해/ 時間들고 精神씨고 利害關係 또생긴다/ 간곳마다 이不便을 언제까지 當할소냐/... 그 不便을 업새고저 한갓맘을 먹은이가/ 一千七百 九十年代 푸란스의 타레이란/ 度量衡制 統一하자 부르지저 외친것이/ 푸란스의 學士院을 움즈기고 말엇더라"('메트르制의 來歷'에서). 이런 과학책에도 이렇게 유영모식 표현이 곳곳에 보인다.
리걸에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