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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

[내가 쓴 책] 호모욕(辱)쿠스

이병주 변호사(법무법인 소명)

나는 상당히 점잖고 얌전한 변호사다. 그런데 의외로 욕(辱)도 잘 한다. 어떻게 욕을 하느냐 하면? 나는 준비서면으로 욕을 한다! 민사소송의 소장과 답변서, 준비서면의 내용을 잘 보면 다 욕(辱)이다. 당사자들은 "내 돈 떼어먹은 나쁜 OOO아!"라고 육두문자로 욕을 하지만, 변호사들은 "피고는 부당하게 채무를 변제하지 않은 악성 채무불이행자입니다"라고 우아하게 법률용어로 욕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책상에 앉아서 우리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상대방의 주장을 욕(辱)하는 내용들이다. 결국 평생 서면으로 상대방을 욕하고 싸우며 사는 우리들은 모두 욕해야 사는 변호사, 호모욕(辱)쿠스들이다.

2013년 가을, 찬 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스치던 어느 날 문득 사람은 욕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나는 항상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미워하고 욕하며 산다. 기사를 검색하면서 싫어하는 정당을 욕하는 재미로 살고, 그 재미가 없어지면 살 맛이 뚝 떨어진다. 그래서 '욕해야 사는 인간, 호모욕쿠스'라는 책을 쓰게 되었다. 알고 보니 세상은 온통 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치는 다른 정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욕하며 싸우는 것이요 몇 년마다 돌아오는 선거는 국민들이 패를 나누어 벌이는 주기적 욕잔치였다 (제2부 욕의 정치사회학). 재판은 거리의 폭력적 욕을 법정의 평화적 욕으로 제도화한 것이요(제3부 욕과 법학), 기독교의 하나님은 사람을 죄인이라고 욕하고, 그 욕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인간의 운명을 욕하며 살아간다 (제4부 욕의 종교학).

최근 예원과 이태임이라는 두 여자 연예인이 촬영 중 서로 욕을 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욕을 먹고 있다. 욕했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욕을 하고 있으니, 욕했다고 욕먹는 두 사람에게는 억울한 점이 있다. 급기야 손석희 앵커는 뉴스에서 우리가 모두 욕해야 사는 사람, 호모욕쿠스라면 "제 때 제대로" 욕을 하자고 훈수를 두고 나섰다. 결국 문제는 '욕을 잘 하며 사는 법(法)'을 찾는 것이다.

욕에는 남에게 하는 욕이 있고 자기자신에게 하는 욕이 있다. 남만 욕하고 자기를 욕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를 욕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된다. 남을 욕하고 자기도 욕할 줄 아는 사람은 욕의 한계를 알고 적당한 데에서 멈출 수 있다. 그러나 남을 욕할 줄만 알고 자기를 욕할 줄은 모르는 바보는 욕의 한계를 모르고 폭주하다가 상대방을 해치고, 상대방의 반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는다. 참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욕을 잘 하며 사는 법'의 요체는 "자기를 욕할 줄 아는 것"에 있다. 모든 것을 욕할 줄 아는 사람, 나도 욕하고 남도 욕하고 세상도 욕할 줄 아는 사람은, 욕이 가지는 위대한 반중력(反重力)의 힘으로 나와 남과 세상과 모든 것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결국에는 욕 그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1부 욕의 인간학).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