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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신윤경 변호사의 쿠바 여행기

'털털털 올드카'에 중절모… 1950년대로 시간여행 온듯

쿠바는 다양한 얼굴의 나라이다. 시가와 럼, 흥겨운 살사 리듬 그리고 카리브해의 백색 해변이 손짓하는 나라 쿠바는 조각배에서 낚시를 하는 노인 헤밍웨이의 말년이 담긴 문학의 고향인 한편, 체 게바라의 혁명 수도이기도 하다.

지난 반세기 간 쿠바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섬이었지만, 최근의 정세 변화로 인해 외로운 섬 쿠바에도 곧 세계화의 바람이 상륙할 것으로 보인다. 쿠바의 참 매력은 1950년대로 시간 여행을 온 것과 같은 향수를 담은 때묻지 않은 모습이기에, 이와 같은 변화는 반가우면서도 짐짓 아쉽다. 나의 기억 속의 쿠바는 털털거리는 올드카들이 얼기설기한 빨랫줄이 걸린 낡은 벽돌 건물들 사이를 달리고, 굴뚝처럼 연기를 뿜어내는 시가를 입에 문 90세 할아버지들이 중절모에 헐렁한 양복을 입고는 갈색 이를 드러내며 소박한 웃음을 짓는 곳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1950년대 클래식 차량과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이 어우러진 거리 풍경을 볼 수 있다.

◇낭만을 품은 도시, 시엔푸에고스=쿠바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도시 시엔푸에고스는 여행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들이 담긴 곳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도시이다. 시엔푸에고스는 카리브해를 안고 있는 항구로 19세기 스페인 제국주의 시절의 건축 양식이 도시 그대로의 보존되어 있어 '남쪽의 진주'라 불리운다.

시엔푸에고스가 자랑하는 명소인 마을 중심부의 오뗄 라 유니온은 콜로니얼 양식의 건축물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고풍스러운 수영장이다. 수영장 옆 바에서는 훌륭한 럼 베이스 칵테일들을 즐길 수 있다. 덤으로 해질녘 건물의 루프탑바에서 석양이 드리운 도시의 지붕과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피나콜라다는 가히 일품이니, 여러모로 시엔푸에고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쿠바 남해안에서 가장 훌륭한 백사장을 가진 해변으로 손꼽히는 앙콘(Ancon) 해변은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부신 장관을 만들어낸다.

◇그림 같은 풍경과 살사의 밤, 트리니다드=쿠바의 남쪽 허리에 위치한 트리니다드는 그림 같은 마을이다. 맹렬히 내리쪼이는 햇살이 흰 돌바닥에 떨어지고, 파스텔 톤의 집들이 골목마다 줄을 선 수채화 같은 느낌의 도시에는 까만 강아지가 행인들의 발걸음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길에 누워 낮잠을 잔다. 꿀과 럼이 향기로운 칵테일 칸챤차라도 트리니다드의 명물이다.

마을의 밤은 음악과 춤으로 화려하다. 공터와 까페, 돌계단을 가득 메운 인파가 밴드가 연주하는 신명 나는 음악에 취해 깊어가는 밤과 함께 살사를 즐긴다. 야외 공연은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레파토리가 주를 이룬다. 살사는 쿠바인들에게 삶의 일부이기에 쿠바를 즐기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크고 작은 마을 어디에든 있는 살사 강습소를 찾으면, 초심자들도 기본적인 살사 스텝은 충분히 익히고 즐길 수 있다.


◇'카리브해의 진주' 쿠바의 해변=쿠바는 북쪽과 남쪽의 해안선을 따라 청초록빛의 카리브해와 맞닿은 백사장의 해변들이 늘어서 있다.

카리브해의 물빛은 세상의 푸른 빛을 모두 담은 듯 영롱하다. 지중해가 2 만년의 아웅다웅한 인간사를 담고 있는 잉크빛이라면, 카리브해에는 인간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고 햇살과 바람이 품어낸 것 같은 순수함이 있다. 카리브해의 일몰 역시 놓치지 않아야 할 경험이다. 달걀 노른자 크기의 태양이 수평선을 붉게 칠하며 카리브해의 바다 속으로 저무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올드카 박물관, 수도 아바나=쿠바의 수도 아바나는 플로리다의 키웨스트로부터 불과 166km 거리에 있어 한 때는 미국인들의 앞마당으로 화려한 올드카들이 도심을 누비는 별장지였다. 그 시절 쿠바의 길거리를 누비던 올드카들은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나이를 훨씬 넘긴 채, 지독한 검은 매연을 뿜어내며 오늘도 도심을 달린다. 살아 있는 올드카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아바나는 수도다운 활력과 분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시내의 까페들이 너도나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내걸고 호객하기에 라이브 음악이 골목 골목 가득하다.

쿠바의 명물 '럼'과 '시가'는 아바나에 위치한 아바나 클럽 럼 박물관과 파르타가스 시가 공장 견학을 통해 체험해 볼 수 있다.

(쿠바 혁명 전 의회가 위치해 있던 아바나의 엘 카피톨리오(El Capitolio)앞에서   사진포즈를 취하고 있는 신윤경(31·변시2회)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

아바나는 작가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 시내 한복판 혁명 박물관 부근에 위치한 분홍색 건물이 인상적인 술집 플로리디따에서는 헤밍웨이의 동상과 함께 앉아 헤밍웨이가 가장 좋아했다는 칵테일 다이키리를 즐길 수 있다.


아바나 중심가의 혁명 박물관과 쿠바 국립 미술 박물관은 쿠바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는 장소다. 미국의 내정 간섭과 바티스타의 독재, 그리고 긴 식민 제국주의 시절을 통해 아로 새겨진 수탈의 역사 속에서 체 게바라의 사회주의 혁명이 쿠바인들에게 가졌을 의미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쿠바와의 국교를 단절하고 경제 봉쇄 정책을 폈던 미국 대통령들을 "얼간이들의 전당(Rincon de los Cretinos)"에 모셔 둔 출구 쪽의 캐리커쳐도 재미 있는 볼거리이다.

아바나에서 단 한 곳만을 가야 한다면 꼭 찾아야 하는 곳은 바로 방파제길 말레꼰이다.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말레꼰은 아바나 사람들이 새벽 조깅을 하고, 개를 산책시키고, 맥주를 한 잔 하며 낚시를 즐기고, 연인과 손을 잡고 석양을 바라 보는 장소이다. 

쿠바의 풍경은 풍요롭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삶으로 가득하다. 빈곤하고 부족해야 할 것 같은 쿠바의 거리에 찡그린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풍요로움에 질식할 것만 같은 현대 사회에서 각박하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쿠바로의 여행은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경험이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