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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50) 용대별집(容臺別集)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필자가 매우 아끼는 책 중에 명나라 말기 동기창(董其昌;1555-1636)의 문집인 "용대별집(容臺別集)" 1책이 있다. 청나라 초기에 동기창의 큰 손자인 동정(董庭)이 편집하고 제자인 서사굉(徐士?)이 교열한 4권 1책(1권: 隨筆, 禪悅, 雜紀. 2권: 書品. 3권: 書品. 4권: 畵旨)으로 편차(編次)한 이 책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손때가 묻은 책(手澤本)이다. 이 책이 추사의 서재에 언제 비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책을 추사가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책의 표제 글씨가 추사의 글씨이며, 중간 중간에 추사의 인장이 무려 35방이나 찍혀 있어서이다.

명말 청초 최고의 서화이론가이자 화가이며 서예가인 동기창, 그는 조선후기 우리 예단(藝壇)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추사 김정희에게 끼친 영향은 추사의 문집인 완당집(阮堂集)을 읽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서예의 필법을 그림에 응용하여야 함을 강조하거나, 석묵(惜墨), 발묵(潑墨) 등의 먹을 쓰는 방법에 관한 이론 등은 모두 추사가 유용하게 썼던 이론이기도 하다.

'동기창(董其昌:1555-1636)의 서축(書軸)은 또한 매우 좋습니다. 필획(筆?)마다 모두 중봉(中鋒)을 운용하였습니다. 동기창 필획의 강력한 흔적이 이와 같아야만 합니다. 이런 다음에야 동기창의 진서(眞書)는 보통 글씨들과 비교할 수 없으며 동기창이 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망령되이 용렬한 세속 사람들은 이런 절묘함이 있는 것을 모르고 동기창의 필법을 함부로 헐뜯고 있으니, 동기창의 필법이 왕희지(王羲之)의 정통에서 나온 것임을 누가 알겠습니까.' 추사가 친구인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에게 보낸 편지 중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추사는 글씨를 배울 때는 현재 있는 상황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서 그를 통해 그 위로 소급하여 올라서서 그 근원에 도달해야 한다고 항상 말해 왔다. 바로 동기창을 배우고 다시 송나라, 당나라를 통해 진나라의 왕희지를 배워야 제대로 글씨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동기창은 명나라 서화의 대가로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서예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여 추사에게 동기창의 "용대별집"은 그만큼 중요하기에 이렇게 아끼지 않았을까.

동기창의 대표적인 이론서는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이라 불리는데, "용대별집"과 약간의 자구 출입이 있을 뿐 같은 내용이다. 거의 제발(題跋)을 모아 놓은 것이며, 또 "화지(畵旨)", "화안(畵眼)"이란 책이 유행하는데 이는 이 중에서 화론(畵論) 부분만 별도로 분책한 것이다. 다음의 한 대목은 이 책 제4권 화지(畵旨)에 나오는 155칙(則) 중에 한 칙으로, 필자가 즐겨 읽는 부분이다.

'화가의 운필 가운데 첫째가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기운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 나면서 저절로 아는 것이며, 자연스럽게 하늘이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워서 되는 경우도 있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걸으면(讀萬卷書, 行萬里路), 가슴속에 온갖 더러운 것이 제거되어 절로 구학(邱壑)이 마음속에서 생기고, 산수의 경계가 만들어져 손 가는 대로 그려내니 이 모두가 산수의 전신(傳神)이다' (시공사발행 "畵眼" 번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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