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고미술 이야기

(49) 유길준의 자작시 한 수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구당 유길준(矩堂 兪吉濬: 1856-1914)하면 누구든지 먼저 서유견문(西遊見聞)이 떠오를 것이다. 그만큼 서유견문이 근대 우리 지식인에게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유길준이 1883년 7월 보빙사(報聘使)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의 수행원으로 도미(渡美), 1884년 가을 덤머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공부 중에 갑신정변(甲申政變) 실패의 소식을 듣고 12월 학업을 중단, 유럽 각국을 순방한 뒤에 1885년 12월 귀국한다.


오자마자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金玉均: 1851-1894), 박영효(朴泳孝: 1861-1939) 등과 같은 개화파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포도청에 구금된다. 그러나 당시 포도대장 한규설(韓圭卨: 1848-1930)의 도움으로 극형을 면하고 1892년까지 북촌 가회동(嘉會洞) 북쪽 언덕배기 즉, 삼청동 밑에 있던 한규설의 별장 취운정(翠雲亭)에서 약 7년간 연금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한규설이 유길준으로 하여금 서양문물에 대해 그동안에 보고 들은 이야기를 쓰게 하기 위한 방책(方策)이었다. 여기에서 집필한 책이 바로 서유견문이다. 만약 이런 조건과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책은 출판되지 못했을 것이다.


유길준이 취운정에서 서유견문을 집필하던 어느 해 한 겨울, 눈 내리는 밤중 서재에서 글을 보며 앉아 있자니 뜰에 한 그루 매화가 꽃망울을 틔우려 한다. 문득 느낌이 동(動)해 시 한 수를 읊었다.

풍설산중야(風雪山中夜) 산중에 눈보라 몰아치는 밤
소연일탑서(蕭然一榻書) 쓸쓸히 책상에서 글을 읽는다.
주인매공소(主人梅共笑) 주인과 매화가 함께 웃으니
춘색재모려(春色在茅廬) 봄빛은 초가집에 벌써 왔구나.
- 文一 平 선생 번역 인용

유길준은 당대에 전통학문인 유학(儒學)과 서양 문물에 가장 밝은 사람이었으나, 당신의 실력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 했다. 하지만 우리 근대에서의 그의 역할은 어느 누구보다도 컸다. 또 다방면에 업적도 있고 식견이 있었지만 제대로 그 진면목이 들어나지 못한 부분이 매우 많다. 어쩌면 서유견문에서 언급한 입헌군주제, 근대적인 세제개혁, 화폐통용, 교육제도개선 등등 이런 모든 일 들이 그 당시 상황에서 쉽게 실행되리라고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든 1889년 취운정에서 완성한 유길준의 초고본 서유견문은 이런저런 이유로 1895년에 가서야 일본에서 출판이 되었고, 유길준이 갑오개혁에 참여하면서 이 책은 갑오개혁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유길준은 글뿐만 아니라 시도 잘하였고, 글씨도 다른 개화파 사람들과 같이 독특한 필치를 구사하였는데, 그의 득의작으로 널리 알려진 이 시 한 수를 보아도 이 시 속에서 그 글씨의 당당함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상황, 저자의 고심 등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