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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노트

번역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라

김재헌 변호사

#1 검찰청에 외국인 고객과 같이 갔다. 고객이 피의자신분이 되어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검찰청에 들어가니 담당 수사관은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인을 위해서 통역인을 미리 불러 놓았다. 통역인과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통역인이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통역을 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이 되었다. 검찰청에서는 통역인을 부를 때 사안의 난이도 등을 고려하여 통역인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날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진술내용이 수사관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수사관의 질문도 고객이 제대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느꼈다.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고, 힘들게 조사가 마쳐졌던 기억이 있다.

#2 미국 LA에서 진행된 증언녹취절차(deposition)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국기업과 미국기업간의 분쟁이어서 통역인이 입회하여 통역을 하였다. 당시 통역인은 미국법원에서 공인한 전문통역인이었는데, 통역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서 그런지 진술이나 질문내용들이 복잡하였는데도 통역과정의 오류를 찾기 힘들 정도도 통역을 잘 하였다. 통역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었다. 통역비용도 소송당사자들이 부담하였다.

#3 러시아 국제 상사중재원에서 내린 중재판정서와 한글번역본, 그리고 관련 계약서를 검토한 적이 있다. 러시아회사가 한국 회사를 상대로 진행한 중재절차에서 받은 중재판정을 한국에서 집행할 목적으로, 그 집행가능성을 내게 문의한 것이다. 내가 러시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내용파악을 위해서 한글번역본을 보았는데, 그 번역본에는 '판결서'라고 하고, '소송사건'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었다. 한국어를 아는 러시아 사람이 번역을 한 것 같았다. 번역본만을 보면 이것이 중재판정인지 아니면 법원의 판결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결국 관련 서류들을 들여다보면서, 이것이 판결서가 아니라 러시아 국제 상사중재원이 내린 중재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번역은 정확하지 않아서 결국 모두 다 새롭게 번역하여야만 했다.



나는 20년간 문서를 영문으로 그리고 한글로 번역을 하고 있고, 그렇게 번역된 것을 리뷰하고 있다. 다른 언어의 번역도 해 보았지만, 영문 번역이 주된 것이었다. 처음에 계약서 등 문서를 한글로 또는 영문으로 번역을 할 때는 번역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고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로만 생각하였다. 번역을 계속 하게 되면서 나는 번역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매일 광화문 앞을 지나간다. 내가 광화문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면 광화문의 형상, 그리고 광화문을 둘러싼 현대사와 과거사에 대한 매우 다양한 이미지들이 연상이 된다. 그런데 내가 광화문을 Gwanghwamun이라고 번역을 한다면 광화문을 본 적도 없는 외국인이 이것의 의미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까? 번역이라는 것이 문서의 의미를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 텐데, 나의 번역이 독자의 이해도를 어느 수준까지 높여주는 것일까? 고객이 이해를 할 수 있기 위해서 각주를 달아야 하나? 의역을 하여야 하나? 번역을 하면서 이런 질문들을 나 자신에게 많이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번역본을 읽게 될 독자들의 입장에서 번역을 하는 습관이 생기게 된 것 같다.

번역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사무실 내 번역팀에 번역을 의뢰한 후 번역팀이 번역한 것을 수정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 사실관계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번역팀에 제공되는 것이 쉽지가 않아서, 문서의 의미를 번역팀이 다 파악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하였다. 실제로 이런 번역문들을 리뷰해 보니, 문서내용에 대한 정보가 주어진 상태에서 번역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점도 비교적 뚜렷하게 보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독자를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는 번역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굳이 변호사들이 번역을 해야 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특히 변호사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첫째, 번역을 많이 하다 보면 타 문화를 이해하는 안목이 생긴다. 해당 언어에 담긴 문화를 이해하게 되면, 상대방의 행동을 잘 이해하게 된다. 미국 외교관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 "I will think about it"이라고 말을 했는데, 이 말은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거절의 의사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외교관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정부에 보고를 하였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국제거래에서 법률적인 테크닉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정작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행동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번역은 상대방의 문화를 파악하는 안목을 기르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둘째, 언어 사용의 정확성이 높아지게 된다. 변호사들은 글과 말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고객과 소통을 한다. 언어를 정확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고객과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런데, 번역작업을 통해서 언어를 곱씹으며 언어를 분해하고 조립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과하면 정확한 언어 사용능력이 생긴다. 젊은 변호사들의 경우 언어사용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언어의 정확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번역훈련을 통해서 언어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번역의 두번째 유익이다.

셋째, 번역을 하면 문서의 내용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문서를 읽는 것과 번역하는 것은 집중도가 당연히 차이가 난다. 문장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지 못해도 읽어지지만, 문장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번역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번역을 많이 하다 보면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역량이 길러진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으리라. 그래서 젊은 변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 번역을 열심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번역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큰 자산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제안 : 번역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지고 번역작업을 즐겨라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