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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에 의사결정 해법을 제시하라

김재헌 변호사

#1 얼마 전에 나는 한국회사가 미국 연방법원에서 미국회사를 상대로 소송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돕게 되었다. 미국회사가 계약상 권리를 주장하며 한국회사를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였고, 한국회사는 응소하면서 반소를 제기하였던 사건이다. 나는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서 미국 로펌을 선정을 하고 미국 변호사와 전략을 서로 협의하고, 한국에서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자료와 정보들을 제공해 주었다. 디스커버리(discovery) 등 증거절차를 마친 후 조정(mediation)절차가 진행이 되었다. 이 절차는 쟁점을 정리하여 합의를 통한 소송의 종결을 시도하는 절차이다. 여러 차례 미팅과 협의를 통해서 당사자의 입장들이 정리되었는데, 미국회사는 패소를 예감하고서 청구금액을 대부분 포기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게 되었다. 더 이상 진행해 보아야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고객의 반응이었다. 미국 회사의 입장 정리에 자신감을 얻게 된 고객은 미국회사의 대표가 사과를 하는 것을 합의의 조건으로 하겠다며, 이 의사를 조정인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미국회사의 대표가 정중하게 사과를 하지 않으면 합의를 하지 않고 판결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한국 정서상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 고객으로서는 그런 입장을 취하게 된 사정과 이유가 충분히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미국변호사들은 문화적 차이와 고객내부사정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변호사는 고객의 이 입장을 최종적인 것으로 하여 조정인(mediator)에게 고객의 입장을 전달하겠다고 이메일로 보고를 하였다 이런 고객의 입장이 조정인에게 전달되면 합의가 성립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이 되었고. 고객이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 배경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냥 가만히 놔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정절차가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나도 진행상황을 매우 긴밀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이메일을 새벽에 받고 바로 뉴욕에 있는 담당 미국변호사에게 전화를 하여 고객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체크해 보자고 제안을 하였다. 미국변호사는 "아쉽기는 하지만, 고객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것은 변호사 윤리에 반한다"며 부담스러워 하였다. 법조윤리를 철저하게 시키려는 미국변호사의 모습이 듬직하고 신뢰가 갔다.

그러나 나는 '고객이 한국적인 시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였기 때문이므로 생긴 오해이다. 고객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이해시키는 것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긴급히 고객과 전화회의를 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래서 당일 긴급하게 미국변호사와 전화회의가 진행이 되었고, 결국 고객도 미국변호사의 설명을 듣고서 미국회사 대표의 사과를 합의의 조건으로 하는 것을 철회하였다. 결국 원만하게 합의로 케이스가 종결되게 되었다. 미국회사가 청구를 대부분 포기하고, 계약의 구속력도 포기함으로써 고객은 경제적 손실을 보지 않게 되었고, 명예도 회복하였던 것이다. 더불어 고객은 미국에서의 소송절차진행을 늘 부담스러워 하였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의 소송절차진행에 대하여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만약에 고객이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언을 하지 않았더라면 해피엔딩으로 종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케이스였다.

#2 고객이 내게 전화를 하였다. 상대방 회사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었기 때문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였는데, 오히려 상대방에서는 고객의 증거수집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협박하고, 또 고객에 대하여 형사고소를 하는 등 각종 공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그냥 당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우리도 무언가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여야 하지 않는가?' 라고 묻는다. 나는 지금은 기다릴 때라고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고객이 불안해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필요한 조치들에 대하여 조언을 해주었다.

의사결정은 고객이 하는 일이고 변호사는 고객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변호사가 그런 위험을 지면서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위험을 지게 되면 변호사가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언을 주는 것이 어려워지게 된다. 이것이 원칙이기는 한데 고객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도움은 되어야 한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는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취지의 애매한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변호사는 고객의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중립적인 의견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사정을 대부분의 고객도 알기 때문에, 변호사의 의견을 참고해서 의사결정을 하지 변호사에게 더 적극적인 도움을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심 고객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변호사들이 해법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항상 고객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일을 해 왔다. 법률적인 평가가 나뉠 때, 즉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을 때, 각각의 장단점을 평가해서 보다 더 고객에서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검토해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고객에게 좀 더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고객에 도움이 되는 해법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사실상 찾아내기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그림의 일부만 보아서는 타당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 변호사들이 열심히 리서치를 하여 의견을 제시하지만 결론이 틀리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고 부분밖에 못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다. 젊은 변호사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의 의견이 고객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나의 의견으로 고객의 문제가 해결 되는가'를 항상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이런 생각이 습관화가 되면 언젠가는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게 된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해법이 보이게 마련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10년 차 정도가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제안: 고객이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도록 해법을 제시하라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