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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광장

기장의 권한과 의무를 선장과 같이 명확히 하자

김인현 교수(고려대 로스쿨)

항공산업은 많은 부분 해운산업과 유사하다. 장소적인 이동을 서비스의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 동일하다. 항구를 포트(port)라고 부르고 공항을 에어포트
(airport)라고 부른다. 그런데, 선장의 권한은 누구도 간섭하지 못한다는 전통이 확립되어있는데 기장의 권한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15세기말 신대륙이 발견된 후 선장의 권한은 왕의 권한과 동일시되었다. 선장들은 왕으로부터 통치권의 상징인 칼을 하사받고 신천지에 도착하여 그 신천지에 칼을 꽂음으로써 그 영토를 왕의 영토로 하면서 자신은 곧 왕을 대신한 총독이 되었다. 변화무쌍한 바다의 안전은 항해전문가인 현장의 선장만이 가장 잘 아는 것이기 때문에 항해에 대하여는 선장의 판단에 일임하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전통이 확립되게 된 것은 초대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덕분이라는 일화가 있다. 해방 후 외국상선을 도입하자 영부인이 방선을 하게 되었다. 식당의 가장 상석인 선장자리에 앉을 것을 청하자, 영부인은 선박에서는 선장이 가장 높은 분이고 존경받아야하는 분이라서 선장자리에는 아무도 않지 않는 것이라고 한사코 자리를 양보하시고는 그 옆 좌석에 앉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그 후 60년 이상 지금까지도 한국해운에서 굳게 지켜져 오고 있다.

통신시설이 발달하면서 육상의 회사에서 선장에게 지시를 할 여지가 많아지게 되자, 우리 선박안전법은 해상안전에 관한 국제조약(SOLAS)의 예를 따라서 2007년 제31조에 "누구든지 선박의 안전을 위한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을 방해하거나 간섭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넣게 되었다. 이와 함께 선원법 제8조는 선장에게 '직항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여객이나 화물을 모두 싣고 나면 신속하게 항구를 떠나 항해를 완수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선장의 불가침의 권한에 대응되는 엄중한 의무이다. 권한을 남용하지 말고 선주나 여객의 이익을 위하여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최소의 시간을 들여서 항해를 마치라는 것이다.

한편, 항공법에서는 이와 같은 명문의 규정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항공기의 운항은 단기간이고 관제탑의 지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장에게 막강한 권한과 의무를 부과시킬 현실적 필요성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 백 명의 인명을 책임지는 기장에게도 상선의 선장에 비견되는 권한과 의무가 부여되어야 한다. 상선에서와 같은 관습이 없다면 오히려 법제도를 마련하여 규정화할 필요성이 더 높아진다. 만약, '누구든지 항공기의 안전에 대한 기장의 전문적인 판단을 간섭하거나 방해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과 '기장은 신속하게 운항을 완수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항공법에 두었다면, 지난해 12월 5일 뉴욕발 인천행 대한항공 램프리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장은 자신의 회항결정이 과연 신속항해 의무에 위반은 아닌지, 비상상황이 기내에 과연 존재하는지 확인하였을 것이다. 만약 그 내용이 기내서비스 문제라면 그것이 비록 부사장의 지시라고 하더라도 이것은 자신의 의무를 면하게 하는 비상사항이 아니므로 회항을 하지 않고 직항을 결정하였을 것이다. 사무장은 기장에게 회항의 근거를 자세하게 제공하여야 하였기 때문에 회항의견을 기장에게 제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기내에 있던 부사장도 항공기의 안전과 항행은 전적으로 기장의 절대적 권한이므로 운항에 혼란을 주는 지시는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법률의 규정이 존재하여 그것이 규범으로 작동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렇게 안전의 확보에서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 법치주의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해운에서도 큰 사고 후에 하나씩 법제도들이 보충되면서 오늘날의 더 완벽한 외항해운의 안전문화가 형성되었다. 항공산업에서도 안전 확보를 위한 법제도의 확충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