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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노트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마라

김재헌 변호사

#1.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고객이 내게 전화를 걸어 미국으로 보낼 서신 작성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월요일까지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나는 전화로 고객의 요청사항을 다시 정확하게 확인한 다음, 월요일까지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하였다. 전화를 끊고 바로 사무실의 미국변호사에게 자료 준비를 요청하였다. 미국변호사는 지체하지 않고 몇 시간 내에 자료를 준비하여 내게 보내 주었다. 나는 이 자료의 내용을 검토한 후에 고객에게 이메일로 송부한 후, 요청한 자료를 보냈다고 문자메시지로 알려 주었다. 월요일까지 제공받으면 좋겠다고 한 것을 몇 시간 만에 제공해 준 것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변호사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기가 어려워서 월요일 정도까지 받으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텐데, 뜻하지 않게 변호사로부터 신속한 회신을 받게 되어서 만족스러웠다는 답변을 받았다.

#2.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메일을 체크하니 새벽에 여러 메시지가 들어 와 있는데 그 중에 김사장이 새벽 3시에 보낸 이메일이 눈에 띈다. 현재 계약협상 중인데, 미국의 거래처로부터 받은 계약서 초안을 바로 내게 전달한 것이다. 이분은 일이 많아서 지체하지 않고 일처리를 하는 스타일 것 같다. 나도 마침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새벽 5시에 이메일을 잘 받았다고 답장을 보낸다. 내가 이런 확인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면 이 분은 내가 이메일을 잘 받았는지 확인될 때까지 계속 궁금해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전 중으로 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메일 내용에 대해서 상의를 한다.

#3. 고객과 독점수입사업의 사업구조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제조회사에 며칠 내 사업 제안서를 제출하는 것이 급하게 결정이 되었고, 고객은 이틀 내에 급히 독점공급계약서 초안을 작성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목적은 그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 아니었고, 계약서의 구조를 보고서 전체적인 사업구조를 재구성하여 제안서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급히 독점공급계약서초안을 만들었다. 이 초안을 작성하면서 중요 쟁점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그 결과를 초안에 반영하였다. 그리고 고객과 초안의 내용에 대하여 논의를 하였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고객은 제안서를 완성하여 제조회사에 예정된 날짜에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내가 만든 독점공급계약의 초안은 '급조'된 것이었다. 완성도가 떨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손을 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객의 목적에는 비교적 충실한 것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도 얼마든지 결과물을 낼 수 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고객을 기다리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객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 고객이 성격이 급해서가 아니다. 고객은 매 순간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들이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고객도 상황에 쫓겨서 빨리 의사결정을 하여야 하는 경우에 많이 직면한다. 그렇기 때문에 급하게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다. 고객도 변호사가 스케줄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고객의 사정이 더욱 중요하므로, 고객으로서는 자기의 변호사가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즉시 필요한 도움을 주기를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미리 알려 주어서 준비할 시간을 주어야지 급하게 요구하면 지금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라고 항의하는 변호사도 있을 수 있겠으나, 고객중심의 사고를 하는 변호사라면 고객의 상황과 환경에 맞추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젊은 변호사들은 아직 고객의 마음을 잘 이해할 만큼 충분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고객을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이 있는 것 같다.

업무를 하다 보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있고, 짧은 시간에 고객에게 결과물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작업이 있다. 그래서 변호사는 업무가 주어지면 소요되는 시간을 예측해 본 다음, 언제까지 결과물이 필요한 것인지를 고객에게 반드시 물어서 기한을 맞출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당장 업무시간을 예측할 수 없으면, 예측할 수 없는 이유를 고객에게 알려 준 다음, 가능한 빠른 시간 내 결과물이 나올 예정 시일을 추정하여 즉각 알려야 한다. 그래야, 고객이 안심을 하게 된다. 고객이 상황을 장악하고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고객은 워낙 이메일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많이 하는데, 주고받는 이메일이 너무 많아서 바로 신속하게 답장을 주고받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신속한 답을 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신속한 답을 요구한다. 이런 분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이메일이나 전화를 마냥 기다릴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 이런 분들의 뇌를 메모리라고 생각해 보자. 메모리에 데이터가 저장되는데, 업무를 완료하고 해당 데이터를 삭제하지 않으면 새로운 업무데이터를 저장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데이터를 소실하지 않기 위해서 저장하고 삭제하고 하는 작업을 계속 반복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분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기다리라고 하면 데이터를 삭제할 수도 없고, 새로운 데이터를 저장할 수 없게 되는 정체상황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은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아무튼 고객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객에게 어떤 업무를 어떤 스케줄을 가지고서 진행하겠다고 상세하게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스케줄을 정할 때 약간 여유를 주고 스케줄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업무가 빨리 마무리가 되어서 하루 이틀 일찍 결과물을 제공하면 고객은 매우 좋아할 것이다.

업무를 하다가 부득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하여서 양해를 구해야 한다. 고객도 합리적이어서 납득할 만한 사정이라면 당연히 양해를 해 줄 것이다. 이런 설명이 오히려 변호사에 대한 신뢰를 높이게 된다. 변호사가 나의 일을 정상적으로 잘 진행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고객은 편안하게 더 기다릴 수 있게 된다. 고객을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고객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나의 제안: 고객에게 결과물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날짜를 정하고, 그 기한을 지켜라. 만약 지연이 될 것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신속하게 알려서 고객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