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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47)동계매첩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조선후기에 오면 지식인들의 사고가 많이 달라진다. 이는 여러 가지 계기가 있겠지만 특히 청나라를 통한 새로운 학문과 문물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하여 특이한 형태의 문학작품이나 새로운 화풍의 그림이 나오기도 하여 다양하게 여러 방면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생활이 풍족한 것은 아니나, 꽉 막혀있던 지식인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되어 삶이 약간은 여유가 있게 되었다.

이런 현상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각자의 좋아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데 있어 크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금보다도 더 전문적인 어떤 곳에 빠져 책을 내거나 그림이나 글씨로 이를 표현하였다. 연암의 글이나 겸재의 그림, 추사의 글씨가 그런 것 중에 하나다.

이런 현상 중에 하나가 버들개지(柳絮)나 매화(梅花)만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선비들이 사군자를 다 좋아하지만 조선후기에 오면 유달리 매화에 대한 일화나 시가 많다. 그 이유는 중국에 많은 학자나 시인들이 매화를 두고 지은 시와 그림이 많이 전해진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여기의 동계매첩(東谿梅帖)은 동전 이태영(東田 李泰永: 1744-1803)과 8촌 동생 계양 이만영(谿陽 李晩永: ?)이 옛 매화 한 분(盆)을 얻고, 그 매화 옆에서 화로의 숯불을 부채로 부쳐 차를 달여 마시면서 매화의 두 가지 모습 즉, 막 피기 시작할 때부터(詠梅) 꽃이 질 때까지(餞梅) 매일 만나 수창한 시첩이 바로 이 동계매첩이다. 동전과 계양이 매화를 두고 지은 시첩이란 말이다.

옛 선비들은 몇몇이 모이면 지금과 달리 주로 술을 한 잔 하면서 공동의 주제를 가지고 시를 주고받는 것이 하나의 상례였다. 술을 주고받는 것을 수작(酬酌)이라 하듯 시를 주고받는 것을 수창(酬唱)이라 한다. 동전과 계양이 이렇게 수창한 영매시(詠梅詩)와 전매시(餞梅詩)의 초고(草稿)를 가지고 첩을 꾸밀 때 집안어른 중에 할아버지뻘의 대시인 사천 이병연(?川 李秉淵: 1671-1751)의 같은 제목의 시를 앞에 실고 동전의 아들 희갑(羲甲: 1764-?)과 희화(羲華: ?)가 마침 찿아 왔을 때 지은 시를 합쳐 실린 시가 총 103수다. 여기에 동전과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태호 홍원섭(太湖 洪元燮: 1744- ?)의 서문과 끝에는 계양의 발문이 붙어있다.

하여 저간의 이런 사정을 알 수가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동전이 이 매화첩을 꾸며 친구인 태화에게 이 시의 비평을 받고 싶어 했는데 이 시첩을 꾸미는 중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동전이 세상을 떠났어도 이 시첩을 꾸민 후에 태호의 비평이 곁들인 서문이 실려 지금 우리들이 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때가 1803년이며, 초고의 시를 서첩에 멋진 행서로 글씨로 옮긴 이는 계양의 동생 이건영(李建永: ?)이다. 한산(韓山)이씨 사람들로만 꾸며진 매화시집이지만,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매화완상과 지식인의 다양한 매화시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시첩이다.

"삼경 밝은 달이 살며시 창문을 엿볼 때, 한그루 찬 매화가 처음으로 피려하네.(三更明月欲窺時, 一樹寒梅初着花; 谿陽 詠梅詩)" "그리움에 남은 향기 가슴에 품으니, 늬엿늬엿 지는 해가 너무나 아쉽다.(耿耿懷殘馥, 依依惜暮時; 東田 餞梅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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