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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46) 관서악부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조선 영조 때에 가난 속에서도 좋은 시를 남긴 석북 신광수(石北 申光洙:1712-1775)란 시인이 있었다. 마흔 가까이 되어서야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과거 운이 없었던지 말단 벼슬을 전전하다가 환갑이 되어서야 노인에게만 시험이 허락되었던 기로과(耆老科)에 장원급제하여 단번에 승지에 임명, 당상관이 되어 살만하다 싶어졌으나 얼마 아니 되어 세상을 떠난, 인생역정에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그가 남긴 많은 작품은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분이 특히 세간에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향시(鄕試)인 한성시(漢城試)에 답안지로 낸 관산융마(關山戎馬)란 과시(科試)인데, 이 시가 얼마나 좋았으면 당시에 평양 교방(敎坊)에서 기생들이 이 시를 제대로 읊지 못하면 일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전해지기까지 했겠는가? 이 시는 석북이 살아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시창(詩唱)으로 유행하고 있으니, 아마도 조선을 통틀어 이런 경우는 이 시뿐인가 한다.

그러나 석북은 과시도 유명했지만 특히 악부(樂府)로 더 유명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평양 산천을 노래한 관서악부(關西樂府·사진) 108수이다. 한 수가 칠언 절구 28자로 이루어졌으니, 삼천 자가 넘는 장편인데, 이 속에는 평양의 역사, 지리, 풍속, 충효, 사찰, 누대, 속요(俗謠), 유흥 등에 이르기까지 그 표현한 수법이 섬세하고 절절하여 하나하나가 진주 같다고 하여 '백팔진주(百八眞珠)'라 하기도 하고, 일 년 동안을 사시로 나누어 읊었다 하여 '관서백사시행락사(關西伯四時行樂詞)'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관서악부는 석북의 다정한 친구인 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이 평양감사가 되어 부임한 후에 당대 최고의 시인인 석북에게 시를 지어 달라고 계속 채근을 하니, 십여 년 전에 평양산천을 두루 돌아보고 한번 멋진 시를 지어 그 광경을 표현해 보고 싶었던 석북인지라, 이 기회에 그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생각을 쏟아 낸 것이 바로 이 관서악부인 것이다.

이 시를 완성한 후에 석북은 또 다른 친구이자 글씨로 이름을 떨친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에게 편지를 띄웠다.

-그대의 멋진 글씨로 이 시를 써 준다면 촌 여자가 서시와 같은 미인이 되지 않겠냐고…-

이런 내용이 석북의 문집에 전해져서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석북이 지은 관서악부를 표암이 써서 번암에게 전해 준 것으로 알고들 있었다. 한데 석북의 후손이 가지고 있는 표암 글씨의 관서악부에 표암이 쓴 발문을 보고서야 저간에 다른 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석북의 문집에 있는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나, 석북이 이 시를 완성한 것이 1774년 인데, 1774년 말이나 1775년 초에 표암에게 편지와 이 시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표암이 이 시를 써 주기로 약속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쓰지 못하고 있던 차 석북이 1775년4월에 세상을 뜨자 표암은 그해 9월, 석북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 시를 써서 아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 관서악부 한 점에는 이렇듯 당대에 시인, 정치가, 예술가로 함께 살아간 세 사람의 우정이 짙게 묻어 있다. 다산의 하피첩, 추사의 세한도에 버금가는 이런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옛 것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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