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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을 보고

조대환 변호사(IHCF 회장)


각종 가족단위 행사나 모임이 유난히 많은 때가 연말연시 이즈음인 듯하다. 가족이라면 법률적으로는 자기를 중심으로 배우자, 형제자매, 부모와 자녀를 포함하고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 그 개념이 확장되기도 하는데, 여러 세대의 직계나 방계 친족이 함께 살던 전통적 가족에서 저출산, 핵가족화로 그 규모가 점차 축소되고, 이혼, 자녀교육, 노인부양 등 가족 간의 관계나 역할변화로 실제 느끼는 가족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사뭇 다른 것 같다. 이런 가족의 문제를 다룬 한편의 연극이 있다.

영국의 극작가 니나 레인(Nina Raine) 작품,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Tribes)'을 예술의 전당에서 보았다. 부모,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평범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가정이야기, 청각장애인인 막내아들에게 수화 대신 일반인들의 언어에 적응하도록 사람들의 입모양을 읽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하게하고 다른 이들에게 정상인처럼 보여지게 키워 온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가족구성원 간 대화의 부재, 갈등과 소외, 장애인가정의 문제를 언어라는 독특하고도 섬세한 소재를 통해 다루며 가족 간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아버지 크리스토퍼는 자신만의 언어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가족들의 언어를 제단하고 지배하려 한다. 어머니 베스는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 추리소설을 쓰며 자신만의 풍부한 감성과 언어로 허구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고, 큰아들 다니엘은 아버지에 반대하며 언어는 쓸모없다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논문쓰기에 전전긍긍하며 우울증 증세마저 보이고, 딸 루스는 언어중심의 가족 틈에서 음악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막내아들 빌리는 청각장애인으로 가족 속에서 침묵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에 목말라 하지만, 정작 가족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가족구성원이 원하는 방식에서 자라온 빌리는 또 다른 청각장애인 실비아를 만나면서 수화를 배우고, 그 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배려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을 멀리하며 대화를 거부한다. 들을 수 없기에 늘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빌리는 가족을 떠나지만 오히려 가족들이 사용한 부정적 언어로 대화하고 행동하게 된다. 가족들은 가장 가까운 존재로 당연히 같은 언어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서로 의미하는 바가 전혀 다른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쓰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전혀 다른 말을 쓰며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내부의 갈등과 소통부재가 빌리의 여자친구 실비아를 통해 적나라하게 표면화되면서 가족은 붕괴에 직면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가족의 붕괴가 그들 서로에게 가족 간의 사랑과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부부는 화해의 포옹을 하고, 루스는 다니엘을 이해하며 감싸고, 다니엘은 빌리에 대한 형제애를 고백하고, 빌리는 가족에게 돌아온다. 그들에게 그렇게나 계속된 논쟁과 말싸움이 어쩌면 그들의 독특한 언어였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극의 배경이나 대사들이 그대로 직역되고 표현되어 우리 한국의 일상적인 대화체의 언어와는 다소 상이해 가족들 간의 소통부재뿐 아니라 관객들과의 소통부재 또한 다소 있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은 그 관계가 숙명적일 수 있다는 이유로 서로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며 상처를 주고 끊임없이 갈등하고 반목할 수 있는 존재로,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애정 어린 대화와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인 것 같다.

최근 개봉되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처럼 가족을 위해 평생 자신만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이 어쩌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네 가족들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따뜻한 정이 그리운 연말연시에, 가족 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열린 소통으로 그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멋진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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