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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취재수첩] '따뜻한 복지' 안되는 이유


"내부 지침도, 선례도 없는데 어떻게 처리하나요? 사고가 생기면 누가 책임집니까?"

'은행이 피후견인 명의의 은행계좌를 개설해달라는 후견인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는 기사를(본보 12월 15일자 1면 참고) 취재하기 위해 전화하자 은행 직원은 '지침이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표준 매뉴얼이 없어 성년후견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성년후견 계약을 하고 싶은데 공증을 해주는 곳이 없어 공증사무실을 전전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때도 공증사무소의 답변은 비슷했다. "법무부의 지침도 없고 표준 서식도 없어서 공증을 해줄 수가 없습니다."

호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고도 호주 정부가 주겠다는 보상금 18억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피후견인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식물인간이 됐더라도 예외없이 본인이 직접 은행을 방문해야 통장 개설을 할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화가 치민다. 식물인간이라는 피후견인의 상황과 18억원이라는 큰 금액 때문이 아니다. 금융기관이나 관공서가 피후견인의 처지가 어떤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뉴얼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제도는 불황에 허덕이는 법조계에는 새로운 돌파구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실무에서 널리 이용돼야 한다. 시행된 지 1년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허점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관공서나 금융기관은 후견인이 업무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신속히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준칙으로 삼고 교육도 강화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정작 은행이나 관공서는 표준 매뉴얼을 어떻게 만들지도, 실무교육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성년후견제도 자체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가 성년후견제도를 널리 알리고 표준 매뉴얼을 작성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성년후견제도가 '따뜻한 복지' 제도로서 널리 이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