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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44) 송계시권(松溪詩卷)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1546년 1월 조선 12대 임금 인종(仁宗: 1515-1545)이 서거하자 명나라 사제천사(賜祭天使)의 부사로 왕학(王鶴: 1516-?)이 온다. 조선에서는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천사(天使)라 하여 매우 정중하게 맞는데, 일단 천사가 오게 되면 의주까지 나가 맞이하게 된다. 이 때 의주까지 나가 맞이하는 사람을 원접사라 한다. 왕학이 왔을 때의 원접사가 호음 정사룡(湖陰 鄭士龍: 1491-1570)이고, 종사관이 만랑 이홍남(漫郞 李洪男: 1515-?)이며, 필찰(筆札)을 담당하던 한리학관(漢吏學官)이 송계 권응인(松溪 權應仁: 1517-1587?)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중국사신이 대부분 글을 잘 모르는 이가 주로 왔지만, 왕학은 장안 사람으로 상당한 식견과 시문에 뛰어났는데, 이 때문에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이 세 사람이 발탁 된 것이다. 왕학은 권응인과 대화하면서 상당히 친근감을 가졌다, 이로 하여 이별할 때 권응인이 글을 하나 부탁하자 오언절구 한편에 서문을 붙여 써준다.

시를 받은 권응인이 스승인 호음 정사룡부터 당대 명사 8명에게 시에 대한 화답을 받고, 다시 호음이 권응인에게 써준 칠언율시 2수에 그 운에 화답한 10명의 시를 합쳐서 시첩을 만들었다. 이 시첩에 이암 송인( 宋寅)의 제첨을 받았으니 이름 하여 송계시권(松溪詩卷·사진)이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 명사의 자작 시문, 자작 글씨, 앞뒤로 찍혀있는 인장 등 임진왜란 이전의 이런 작품이 매우 귀한 우리나라에서 이 시첩은 선조들의 친필(親筆)로도 중요할 뿐 아니라 조선 초기 서예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보물급의 자료이다.

글씨를 받은 송계 권응인은 글은 퇴계에게, 시는 호음에게 배워, 시인과 평론가로 이름을 떨쳐, 교산 허균(蛟山 許筠)의 극찬뿐만 아니라 당대의 많은 이에게 칭찬을 받던 시인 중의 한 분이였다. 그의 저서 '송계만록'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다만 송계 권응인의 글씨는 보이지 않는 데 책 맨 뒤에 글시 쓴 이들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있는데 이 글씨가 송계의 글씨가 아닐지.

또 책 끝에는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1724년에 이 책을 수리했다는 글이 남아있다. 이 시권의 제첨 글씨가 희미하여 보이지 않아 후인이 옆에 간첩(簡帖)이라 잘못 쓰는 바람에 글을 모르는 이들은 편지 글씨로 오해할 수 있다. 송계시권에 수록된 분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오언절구
1) 왕학(王鶴: 1516-?, 호는 薇田, 1546년) 2) 정사룡(鄭士龍: 1491-1570, 호는 湖陰, 1546년) 3) 박충원(朴忠元: 1507-1581, 호는 凝川, 1546년) 4) 이홍남(李洪男: 1515-?, 호는 漫郞, 1546년) 5) 신잠(申潛: 1491-1554, 호는 靈川子, 1550년) 6) 심수경(沈守慶: 1516-1599, 호는 聽天, ?) 7) 송인(宋寅: 1516-1584, 호는 , 1567년) 8) 정유길(鄭惟吉: 1515-1588, 호는 林塘, 1568년)

* 칠언율시
1) 정사룡(鄭士龍: 1491-1570, 호는 湖陰, 1546년) 2) 홍섬(洪暹: 1504-1585, 호는 訥菴, ?) 3) 조사수(趙士秀: 1505-1558, 호는 松岡, ?) 4) 이희보(李希輔: 1473-1548, 호는 安分, 1544년) 5) 황여헌(黃汝獻: 1491-?, 호는 柳村, ?) 6) 이황(李滉 :1501-1570, 호는 退溪, 1557년) 7) 황준량(黃俊良: 1517-1563, 호는 錦溪, 1560년) 8) 심수경(沈守慶: 1516-1599, 호는 聽天, 1563년) 9) 이양원(李陽元: 1533-1592, 호는 鷺渚, 1569년) 10) 이희보(李希輔: 1473-1548, 호는 安分, ?) * 호 뒤의 년도는 글씨를 쓴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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