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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山行의 길잡이

서세연 법무사(서울) -제3113호-

나도 다른 등산애호가들처럼 산에 오르내리기를 무척 좋아한다. 젊었을 때에는 그저 산이 좋아 이산 저산 무작정 오르내렸지만 요사이 나이 들어서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르내린다(지금은 다리를 다쳐 그 후유증으로 꿈쩍도 못하고 있어 마음속으로만 눈을 감고 내가 다녔던 산길 그 숲 속을 더듬고 있지만). 산에 오를 때와 내려올 때에는 그 길이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 걷게 되는 것이 보통의 산행일 것이지만 산에 자주 오르내리다보면 사람이 너무 붐비는 등산로를 피해 인적이 드문 한적한 길을 택할 때가 더 많다. 봉우리가 높고 골짜기가 깊은 큰 산이든 낮고 얕은 작은 산이든 등산로가 분명한 길은 그 산을 처음 찾은 초행길이라 해도 산에 올랐다 내려오는데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걷다보면 그 길이 빗물에 씻기는 낙엽이 쌓이고 눈에 덮여 있을 때에는 길의 방향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그 때 나는 습관적으로 어디엔가 나뭇가지에 누군가 단체산행을 위해 사전답사를 하면서 그 길의 안내표지로 메달아 놓았던, 아니면 자연보호 캠페인을 겸한 등산로 방향표지로 먼저 오른 등산객이 친절하게 메달아 놓은 ‘리본’을 찾는다. 길의 방향을 가늠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빛바랜 ‘리본’이 눈에 띄면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고 고마울 수가 없다. 내가 15년전 일행 몇명과 더불어 지리산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 할 때에는 칠선계곡을 타고 내려온 일이 있는데 칠선계곡은 다 알다시피 지리산에서는 제일 길고 깊으며 넓은 그 경관이 너무나 수려한 계곡인데 그 당시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칠선계곡등산로에는 등산안내 및 이정표 등을 설치해두지 않아 자연 그대로인채 방치(?)되어 있었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계곡 이쪽저쪽을 11번이나 건너야 되는데 건너 쪽에 있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아 망설이며 두리번 두리번 길을 찾고 있을 때 계곡 저편에 색바랜 ‘리본’이 보이면 한숨을 돌리고 방향을 쉽게 잡아 길을 찾은 후 추성리로 내려 올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지리산에 매료되어 수십번을 이 능선 저 골짜기를 오르고 내렸다. 몇년 전에는 세석산장에서 숙박을 한 후 다음날 촛대봉, 삼신봉, 연하봉, 장터목산장을 거쳐 백무동 쪽으로 하산 할 요량으로 오후 늦게 거림골로 들어섰는데 세석평전에 도달하고 보니 마침 그 때가 세석철쭉제가 열리고 있는 날이라 그 넓은 세석평전에 산악인들이 설치한 텐트가 수천 개가 깔려있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벼 그 곳 산장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일행과 상의 끝에 바로 한신계곡을 타고 하산하기로 하고 그곳 산장에서 손전등을 몇개 산 후 한신계곡으로 내려서는 입구를 겨우 찾아 내려가는데 칠흑같은 밤에 그 곳은 마침 휴식년제가 시행되고 있어서 사람이 자주 다닌 흔적이 없는 터라 손전등으로 길을 비추어도 길이 희미해서 길을 찾아 내려가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 때도 손전등을 사방으로 비추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색바랜 ‘리본’을 찾아 방향을 잡고 더듬거리며 백무동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산에 가보면 나뭇가지에 형형색색의 리본이 너절하게 매달려있어 보기가 흉하니 자연보호 차원에서 ‘리본’을 달지 않았으면 좋겠고 꼭 달아 놓아야 할 필요가 있으면 쉽게 썩어 없어지는 물질로 ‘리본’을 만들어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글을 써놓은 것을 본 일이 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그는 아직 산에서 길을 잃고 공포 속에 헤매어 보지 못한 사람같다. 한갓 빛바랜 하나의 ‘리본’일지라도 그것은 길 잃은 등산객에게는 산행의 안내자이고 숲속의 등대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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