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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전시회 '뭉크와 르누아르' 를 보고

조대환 변호사

한여름 더위를 식힐 장소를 둘러보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에드바르드 뭉크-영혼의 시 전'과 '20세기 위대한 화가들-르누아르에서 데미안 허스트까지 전'을 감상했다.

사실 미술작품은 개인적으로 음악에 비해 쉽사리 감동을 받거나 느낌이 전달되질 않아 많이 접하질 않았었는데, 마음을 먹고 작품설명을 꼼꼼히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니 개성이 뚜렷하게 대조되는 두 예술가, 뭉크(Edvard Munch)와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작품을 통해 미술세계의 또 다른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뭉크전은 표현주의의 거장 뭉크가 평생 고민했던 삶과 죽음, 사랑에 관한 얘기들이 상실, 불안, 에로스, 사랑과 고통, 욕망, 여자, 붉은 방 등의 주제로, '절규', '마돈나', '불안', '키스', '별이 빛나는 밤', '뱀파이어'등의 판화와 회화작품과 더불어 '병실에서의 죽음', '열병' 등 드로잉이나 사진작품, 셀프카메라작품까지 볼 수 있었다. 가난 속에서 어려서 폐렴과 결핵으로 어머니와 누이를 여의고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뭉크는 고흐처럼 정신병적인 고통으로 일생을 우수와 고통 속에 인간의 불안과 고독을 묘사하는 우울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특히, 음산한 물결구름하늘과 소용돌이치는 피오르드해변, 음산한 도시와 귀를 막고 잔뜩 겁에 질린 이의 모습을 절묘하게 묘사한 '절규(The Scream)'와 몸을 젖히고 배를 내밀며 관능적인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임신한 여인 아래 왜소한 태아를 그린 '마돈나(Madonna)'는 물질주의로 고통 받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정서와 무기력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삶에 대한 공포가 늘 나를 따라다녔다'라는 그의 작품설명이 말하듯, 뭉크는 인간의 삶에 대한 불안과 죽음의 공포를 가장 밀도 있게 그려낸 화가인 것 같다.




 

뭉크-르누아르, 어려운 환경 같이 겪었어도 가치관은 반대
'절규'-'풀밭의 두여인' 삶의 공포-행복 표현 극단적 대비

반면,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전시회는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격변의 현대미술을 이끌어 온 피카소(Pablo Picasso), 앤디워홀(Andy Warhol) 등의 회화, 조각, 콜라주,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1800년대 후반 파리를 중심으로 등장한 모네(Claude Monet), 르누아르로 대표되는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고전주의 등 전통미술의 비례, 균형, 조화 등의 엄격함이나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자연과 그 속에서의 인간을 자신들 스스로 느낀 감성 그대로 빛과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그려,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등 현대미술의 서막을 열었다. 대표적 인상주의화가 르누아르는 '그림은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라고 하며 일상 속 인물들을 사랑스럽게 묘사했다. '풀밭의 두 여인'이나 '목욕하는 여인들'에서는 화려한 색채와 명암으로 여유로운 여인들의 미소와 풍성한 초원의 한가로움과 더불어 온화하고 풍만한 여성미를 묘사해 뭉크와 달리 삶의 근심 없는 즐거움과 안락함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뭉크와 르누아르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에 어려운 환경을 같이 겪으면서도 그들의 가치관이나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달리해 그 표현하는 예술의 주제나 작품내용에서도 상당히 다른 인간 삶의 면모를 보여준다. 인간이 일생동안 느끼는 불안, 우울, 공포, 고뇌 등 비관적 감정표현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고 적나라하게 예술에 담으려 했던 뭉크와 달리, 르누아르는 도자기화공으로 어릴 때부터 힘든 생활을 하고 노년에는 병마에 시달렸어도 비관보다는 오히려 행복을 작품에 담으려 해 현대인들에게 위안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 하다.

미술은 화가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시대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의 작품을 보는 이들은 저마다의 느낌과 가치로 인생과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우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멋진 예술인 것 같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