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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40) 팔괘매화연적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요즘 북촌미술관에서 사랑방전을 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매우 운치 있는 연적 한 점을 보았다. 이름하여 백자청화팔각팔괘매화문연적(白磁靑畵八角八卦梅花文硯滴: 높이 9.2cm, 폭 14cm·사진)이다.

다소 이름이 길지만 연적치고는 꽤 크고 높다. 연대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문방구가 선비의 멋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조선시대 학자라면 꼭 갖고 싶어할 팔괘와 매화그림이 있는 연적은 처음 본다.



하얀 빛깔에 팔각으로 살짝 각을 하고 그 한 면마다 청화(靑畵)로 이중으로 굵은 선과 가는 선으로 둥글게 줄을 치고 그 안에다가 학문으로는 가장 으뜸으로 치는 주역(周易)의 기본 괘인 팔괘(八卦)를 또 청화로 넣고, 위에는 팔각의 청화로 얇은 선을 하고 그 안을 화폭으로 삼아 굵은 줄기의 매화 등걸이 중간에 한 바퀴 휘돌아서 위로 솟아올라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꽃을 피우고 있다.

생기가 넘쳐흐르면서도 17세기 설곡 어몽룡(雪谷 魚夢龍: 1566-1617)이나 창강 조속(滄江 趙涑: 1595-1668)이 그린 고매(古梅)의 풍격도 느껴지고,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나 우봉 조희룡(又峰 趙熙龍) 같은 산뜻한 채색 느낌도 나서 한참을 서성거리며 보았다.

알다시피 매화그림은 17세기에 오면 선비의 이상향과 어울리어 실지의 매화보다도 더 고고한 멋을 준다. 이는 그 당시 왜란이나 호란 등 전란과 각종 사화의 여파나 당쟁의 와중이기에 뜻있는 선비는 벼슬보다는 숨어 지내며 학문에만 뜻을 두다보니, 그 마음을 대나무나 매화 속에 은연중에 내비쳤던 것이다. 하여 당시에 매화로 이름난 분들은 거의가 선비화가였다. 그 대표적인 분이 창강 조속인데, 창강은 인조반정에 공이 있어 공신칭호를 주었는데도 받지 않은 사람이다.

이 시기에는 난초와 국화가 아직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18세기에 오면 매화는 고매보다는 실지의 매화와 유사하게 그렸다. 이는 청나라에서 수입한 동양화 백과사전격인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과 십죽재화보(十竹齋畵譜)의 영향도 있겠지만 옅은 채색도 넣고 홍매엔 짙은 꽃술도 그려 넣어 새로운 형태의 매화가 나타난다. 이의 선두 주자가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이며, 여기에 참신한 채색 및 줄기와 가지의 날씬한 맛을 더한 화가가 단원 김홍도이고, 여기에 더 한층 흐드러진 꽃, 화면 전체에 홍과 백의 화려한 색을 더해 고매의 그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구성과 색을 쓴 화가가 우봉 조희룡이다. 그 이후는 이 세 부류의 그림과 유사한 매화만 있을 뿐이다.

필자가 이 연적을 보고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청화로 그린 매화그림이 바로 단원이 그렸을 법한 매화이기 때문이다. 휘감고 올라간 매화 등걸하며 끝에 대여섯 가지로 뻗어나가 몇 송이 꽃망울을 피운 것하며, 14cm 안에 이 정도의 그림을 그린 수준은 단원이 아니라면 그 주위의 친구이거나 제자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이 연적의 매화그림은 19세기 단원 김홍도의 다른 매화 그림 한 폭과 그리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꼭 그린이의 이름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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