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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재판의 예술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판결서를 잘 쓰는 것이 훌륭한 재판의 최우선 조건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판결서를 잘 쓴다는 것은, 청구원인과 항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적절한 접속사와 조사의 연결을 통해 여러 개의 문장을 단일한 호흡으로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며, 당사자의 주장이 아무리 난삽하더라도 최대한 '선해(善解)'하여 재구성한 다음, 이를 다시 '이유 없다'고 배척함으로써 판결서의 가독성을 높이는 작업을 주로 일컫기도 하였다. 어떤 선배 법조인이 이러한 문장의 '가공' 기술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울러 자기 완결성을 지닌 완벽한 판결서의 작성도 강조되었다. 이러한 '완벽에의 충동'으로 말미암아 일단 초고 상태로 선고한 후에 판결서를 수차례 수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의 대법관들이 판결서 공개 후에도 그 이유의 주요 부분까지 다시 수정하는 관행 때문에 하급심과 학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절차의 투명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하버드대 로스쿨 라자루스(Richard J. Lazarus) 교수의 주장을 보면, 완벽한 판결서 작성을 위해 판사들이 기울이는 부단한 노력은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호이징하(Huizinga)가 재판을 규칙에 터 잡은 경쟁인 '놀이(play)'의 한 형태라고 보았듯이, 법의 예술성은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그 텍스트를 토대로 한 '공연(performing art)' 측면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재판이라는 공연에 참여한 배우들은 자신의 독창적인 법률 해석을 토대로 청중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고, 판결은 그 창조적 의사소통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공연 활동을 통해 그 최종 판단이 개인적 편견이나 정치적 영향력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독자성과 신뢰성이 보장된다.

최근 창원지방법원이 도입한 '예술법정'은 법정이 창조적 의사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물리적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2014년 8월1일부터 시행되는 대법원의 '형사판결서 작성방식 적정화에 관한 예규' 역시 실제로 '공연'이 이루어진 쟁점 부분 위주로 판결서를 작성하도록 함으로써 그 '예술적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종래 강조되었던 판결서의 '자기 완결성'이란 사실상 달성 불가능한 목표였고, 오히려 실제로 '공연'되지 아니한 부분까지 잘못 반영될 우려가 있었다.

영국의 19세기 법조계를 풍자한 오페라 '이올란테(Iolanthe)'에서 대법관(Lord Chancellor)과 귀족들은 법체계의 완벽성을 찬양하고 엄격한 법 적용을 노래하지만 결국 그 법체계를 자신들에게도 적용하려 하자 모순점이 나타나게 된다. 서머셋 몸은 '달과 6펜스'에서,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자기 영혼의 고뇌를 통해 이 세상의 혼돈으로부터 만들어 내는 놀랍고도 불가사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진정 아름다운 판결은 완벽을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혼돈과 불가사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창조적 고뇌의 결과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