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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민들레 압정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얼마 전 워싱턴 포토맥 강가에 위치한 숙소에서 창밖을 지나가는 미국 사람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조깅을 하고,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을 손에 들고 걷는 것이었다. 뛰는 사람은 대개가 날씬하고 손에 먹을 것을 든 사람은 대체로 뚱뚱했다. 날씬한 사람은 더욱 몸매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서 운동을 하고, 뚱뚱한 사람은 손에 있는 것을 다 먹고는 가방에서 또 먹을 것을 꺼내들었다.

문득 시인 이문재의 '민들레 압정'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최근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출사를 하였으나 여론과 청문회의 벽에 부딪쳐 낙마를 한 분들이 여럿 된다. 그만한 신임을 얻기까지에는 소문날 정도로 훌륭한 실력과 나름 자기관리에 철저함을 유지해왔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처 정리하지 못한 부분과 고속으로 바뀐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점이 지적되고 있다. 심판을 하던 사람이 선수역할을 할 때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대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리라.

마냥 가벼움으로 일관할 수도 없고 항상 신중할 수도 없다. 민들레 꽃은 다음에 하얀 홀씨가 되어 바람의 갈피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가벼움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 줄기는 봄부터 꽃피우기까지 영양공급을 위해서는 통통함을, 또 다 마를 때까지 비바람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단단함을 유지해야 한다. 뿌리는 어떤가. 꽃과 줄기를 지키기 위해 땅을 움켜쥐고, 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땅속에 저 낮은 곳 깊이 박혀야 한다.

운칠복삼(運七福三)이라는 공직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든지 이사(직책과 이별할)갈 준비로 짐을 가볍게 하고,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약속을 적게 하여야 한다. 약속을 많이 하여 남에게 지나친 기대를 주는 것을 자제하여야 한다. 아무리 탁월한 것이라도 부풀어 있는 선입견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공적인 일에는 뜻을 굳게 세워 사람들이 모이게 해야 한다. 뜻으로 뭉치는 사람이 많으면 역할을 분담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세상에 뜻이 굳고 높을 수록 마음 맞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다가 대의의 강직함으로 깊은 정을 배제하는 데서 독선이 싹트기 십상이다. 뼈대가 중요하지만 살이 없으면 인간의 체취가 사라지기에 저 깊은 바닥에 서로 인정을 나누고 사는 것이 좋다. 민들레 홀씨의 가벼움, 줄기의 굳건함, 뿌리의 하심(下心)으로 두루 함께하는 선비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