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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정의와 헌법에 관한 단상

이수열 판사(서울중앙지법)

몇 해 전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촉발된 정의 신드롬은, 평범한 환경과 외모의 소유자가 '슈퍼스타 케이(K)'에서 우승한 것을 정의의 실현으로 표현할 정도로, 각종 사회현상을 정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언가 거창한 명제를 다룰 듯한 샌델의 책은 2004년 허리케인 찰리가 플로리다를 강타하고 지나간 후 발생한 폭리 현상을 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민법총칙에서 공부하던 이슈를 샌델은 정의의 관점에서 다룬 것이다. 그렇다. 법조인에게 무겁고 영원한 숙제와도 같은 정의는 슈퍼스타 케이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고 평범한 사건에서 항상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생활 속에 녹아 있으면서도 왠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헌법이다. 미국의 초등학생들은 자신의 발언이 저지당하면 주저 없이 수정헌법 1조를 들먹인다고 한다. 미국 연방법원 판결은 하급심이라도 법률의 위헌 여부가 쟁점으로 등장하지 않는 것이 드물 정도다. 반면 우리 법정에서는 헌법적 이슈가 제기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는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판단하도록 되어 있는 우리 헌법하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법원이 헌법적 쟁점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정에서 헌법적 쟁점이 활발히 제기되고 법원의 위헌제청결정이나 위헌이 아니라는 판단을 통해 다수의 선례가 쌓인다면, 헌법이 우리의 생활에서 더 살아 숨 쉬는 규범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에 9명의 헌법재판관으로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국에 고루 포진한 2800여 명의 법관이 헌법으로 무장할 때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더 잘 구현될 수 있음은 명백하다.

오늘날 미국에서 법원의 위헌법률심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마부리 대 매디슨(Marbury vs. Madison) 사건'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대등한 기관인 사법부가 심사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벽에 음각되어 있는 존 마셜(John Marshall) 대법원장의 설시는 의외로 간단했다. 헌법과 법률이 충돌할 때 법원은 어느 것을 적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단언컨대 무엇이 법인지 선언하는 것은 사법부의 영역이자 의무이다(It is emphatically the province and duty of the judicial department to say what the law is)."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