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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39) 조객록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선조 연간에 진주 유(柳)씨로 문장이 뛰어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잘 대처했던 서경 유근(西坰 柳根: 1549-1627)이란 분이 있다. 이 분의 형님이 정언(正言)을 지낸 유격(柳格)인데, 이 조객록(弔客錄·사진)은 바로 유격의 부인 전주 이씨가 1614년(광해군 6년) 9월29일 남문 밖 약현(藥峴)에 있던 집에서 70세로 돌아갔을 때 문상 온 사람들의 명단이다.



뒤에는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 혜환 이용휴(惠? 李用休: 1708~1782), 해암 유경종(海岩 柳慶種: 1714-1784)의 친필로 쓴 발문이 붙어 있다. 발문을 쓴 세 사람은 모두 실학자인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제자이며 표암과 해암은 처남 매부지간이다. 모두 안산 주변에 살았던 관계로 여기에 같이 글을 싣게 되었을 것이나, 사실은 조객록의 주인공이 해암의 오대조 할머니인 까닭이다. 이 조객록에는 당대에 절의(節義)로 또는 학문이나 정치가로 이름을 드날린 사람이 많이 보인다. 이들이 조객록에 직접 이름을 쓰기도 하고, 유격의 큰 아들인 유시회(柳時會: 星山公)가 대신 적어 놓은 것도 있다. 이 조객록을 통해 당시 조객록의 형식이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 이 조객록을 통해 그때는 사대부의 상기(喪期)가 지금같이 3~5일이 아니라 보통 30일 전후로 치루기 때문에 한번만 조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친한 사람은 시간 있을 때마다 문상을 갔다는 것이요, 남자나 여자나 관계없이 똑같이 장례를 치뤘고, 똑같이 조문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실린 인물은 김상용(金尙容)과 김상헌(金尙憲)형제, 오억령(吳億齡), 윤의립(尹毅立), 이춘영(李春榮), 이성길(李成吉), 신익성(申翊聖), 이수광(), 심희수(沈喜壽), 홍경신(洪慶臣), 송영구(), 심열(沈悅), 정엽(鄭曄), 유희분(柳希奮) 등이다. 유격의 아들이 넷인데, 이 분 후손들이 조선후기 벼슬한 사람도 많았고 학문으로도 이름을 떨쳐 진주 유씨(柳氏)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남인(南人)명가로 이름을 떨쳤다.

표암의 발문은 표암유고(豹菴遺稿)에 "유씨위문록 뒤에 쓰다. 書柳氏慰問錄後)"로 나와 있으며, 그 내용은 똑같다.

"무릇 물건이란 오랜 것을 귀하게 여기나니, 주정상이(周鼎商彛; 중국 주나라의 솥과 상나라의 술그릇)가 그릇으로 썼기 때문만이 아니다. 장서가의 서재에 꽃인 만권의 책도 백 년이 되질 않아 연기처럼 흩어진다. 오직 여기 몇 장의 헌 종이가 지금 165년이나 되었으니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이 중에는 위인(偉人), 거공(鉅公), 문장(文章)과 절의(節義)로 이름난 분들의 이름이 몽땅 붓으로 흐리게 쓴 글씨 속에 빛을 발하고 아직도 완연하니, 그 오래되어 귀중하게 됨이 주정상이와 비견 될 만하다. 이 책의 주인이 된 사람이 오래 보존하여 천년의 긴 세월에 이르게 할 수 있다면, 그 집안이 오래 지속되고 자손이 효도하고 삼가하며 살아감을 여기에서 미리 점칠 수 있을 것이니, 이 책을 어찌 소홀이 대할 수 있겠는가."

표암의 발문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릇이나 쇠붙이보다도 이 다 떨어진 종이에 흐릿하게 이름만 나와 있지만, 이 조객록을 보면 쓴 사람 각각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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