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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관의 친구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의 레이더(Rader) 법원장이 2014년 6월 30일 법관직을 사직한다고 한다. 레이더 법원장은 올해 초 친분이 있는 변호사에게 이메일을 보내어 그 변호사의 변론 실력을 칭찬하면서 이메일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도 좋다고 했는데, 그 변호사가 법원장의 지시를 '충실히' 따라 고객들에게 그 이메일을 보여주어 언론에까지 보도되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결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위 변호사가 대리하고 레이더 법원장이 관여하였던 사건들의 결정을 직권으로 무효로 하였다. 레이더 법원장은 위 사건들을 회피한 후 2014년 5월 23일 동료 법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외부에 공개하는 형태로 경위를 밝히고 우선 법원장직을 사직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해서는 추호도 타협한 바 없지만, 불공정해 보이는 외관을 만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미국 내의 반응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레이더 법원장이 워낙 사교적(gregarious)인 성격으로 유명하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변호사들을 과도하게 칭찬하는 사례도 빈번하였으므로 위 이메일 또한 그러한 의례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유일한 특허 전문법원인 연방순회항소법원이 그동안 특허 전문변호사들과 지나치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특허권 보호에 치우친 판결을 해 왔는데 이 기회에 이러한 '유착관계'를 개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더 법원장이 이메일 끝에 서명처럼 사용하는 문구로 알고 있는 '당신의 친구(Your friend), rrr(Randall Ray Rader의 약자)'까지도 문제 되는 것을 보면서 전자의 의견에 개인적으로 일부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부적절한 처신이었음은 분명하다.

후자의 견해 또한 쉽게 찬성하기는 어렵다. 법관의 사회적 유대관계가 부족하면 기록에만 파묻혀 당사자를 메모지에 표시할 기호로 인식할 뿐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에 바탕을 둔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외부에서 정기적으로 문제 법관을 선정·공표하더라도 이러한 사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전문가 집단으로부터의 건전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독불장군식 재판은 해당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손해를 끼치게 된다.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인 변호사가 법정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친구관계를 끊어야 하는가'라는 식으로 '법피아' 척결 목표 아래 법관의 사적 친분관계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은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 없고, 4촌을 넘는 친족이 법무법인 구성원 변호사인 경우에도 사건을 재배당하도록 한 현행 제도처럼 외관상의 염결성을 위주로 하는 방안 또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사적인 친분 관계와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는 해당 법관 자신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다. 형식적 기준에 따른 규제보다는 법관 개인에게 더 광범위한 선택권을 주는 대신 책임을 엄하게 묻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 나간다면 앞으로 법조일원화 시대의 이른바 '역 전관예우'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