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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존재와 당위-미네르바의 부엉이

김대휘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모든 학문의 근본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이고, 법철학은 '법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죽음을 맞게 되는 현존재(Dasein)로서 결코 당위와 일치할 수 없지만 '당위를 지향하는 존재(Sollendes Sein)'라고 할 수 있다. 존재(存在,Sein)와 당위(當爲,Sollen)가 완전히 일치하는 일원론자(Monist)는 신(神)밖에 없다. 인간이 신에 가까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욕망이나 타인의 유혹에 의하여 당위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의 결함이나 잘못은 도외시한 채 타인(요즈음 특히 고위공직자)에게는 성인에 준하는 도덕률이나 합법성의 기준을 요구한다. 어떻든 인간은 당위를 지향하고 있는데, 당위에는 도덕규범이나 관습 등도 있지만 대부분 강제와 결부되어 있는 당위로서의 법이 인간에게 중요하다. 법은 당위이지만 현실에 정초하고 있으며, 존재와 유리되어서는 아니된다. 그래서 법을 '존재하는 당위(Seiendes Sollen)'라고 한다.

독일의 헤겔(Hegel)은 법철학 서문에서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 라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는 존재와 당위가 일치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인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위법한 사태는 '존재하는 비현실'로서 -부정하고 싶은 사실- 이러한 비현실에 대하여 합리적 이성인 법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다시 현실적인 것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적 세계에서의 변증법이고, 현실과 이성의 합치가 되는 것이다. 또한 위 명제는 법이 현실의 기반 위에서 현실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도 생각된다.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을 추어라.' 헤겔의 이 말 역시 이 땅 위의 현실을 기초로 하여 학문을 논하고, 법을 세우고 실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헤겔은 법철학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들자 날기 시작한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는 통상 '철학은 그 시대를 넘지 못한다', 즉, 현실세계의 형성이 완료된 후에 비로소 이론이 정립되어 과거의 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필자는 이를 법의 기능과 한계로 해석한다. 사법(司法)은 사회적 분쟁이 발생한 후에 비로소 개입하여 절차를 통하여 분쟁을 종결시킨다. 분쟁을 예방하는 자문(諮問) 등의 법적 기능이 있지만, 이는 예측이고 종국적 해결이 아니다. 입법(立法)도 장래의 사태를 규율하기 위하여 미리 규범을 설정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단지 예측에 기한 추상적 기준이거나 일이 터지고 난 후의 대책에 불과하고, 법은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에 사법을 통하여 구체적, 현실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바로 지혜의 상징으로서 이성적인 법을 말하는 것인데, 존재와 당위 사이 어디에선가 양자를 합치시키는 접점이 되어야 한다. 그 부엉이는 오늘 황혼 이후에 날아서 내일 날이 밝은 이후에 생겨나게 될 일들의 규준이 될 수 있기에 법률가, 특히 법관들은 어둑한 황혼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