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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피겨에 빠진 김선휴 헌법연구관

김연아의 황홀한 연기에 감동… 문외한이 마니아로

사법시험을 치르고 난 2007년 가을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얼음 위의 한 소녀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에 맞춰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처음 받은 느낌은 그 움직임이 무척이나 '부드럽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표정과 동작이 음악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예전 경기영상들을 찾아보다 '록산느의 탱고'를 접하게 되었고, 그 길로 출구 없는 피겨의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김연아 선수의 경기영상을 찾아 감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피겨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받는 감동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새 점프와 스핀의 종류를 구분하게 되고 경기의 기본 룰을 알게 되며, 경기를 볼 때 잘못된 엣지 사용이나 점프의 회전수 부족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랑프리 시리즈나 세계선수권 등 굵직한 대회는 꼭 챙겨보고 능력자들이 제공하는 자막을 통해 각국의 다양한 피겨해설을 감상하는 것도 보통 겪게 되는 과정이다.

김선휴(32·사법연수원 40기) 헌법연구관은 지난 1월 고양시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열린 제68회 전국 남녀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 참가해 경기를 지켜봤다.

점프의 종류·룰 등 알고 보니 더 흥미진진
경기장은 높이·스피드 또다른 느낌의 세계
김연아 은퇴 기념 아이스쇼 맨 앞줄서 감상

경기장에 가서 직접 관람을 하면 또 피겨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 화면으로는 느끼기 어려운 현장감, 선수들의 스피드, 점프의 높이와 비거리, 빙판의 고른 활용 등이 확연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좋아하는 선수를 직접 눈으로 보는 기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최근 국내 유망주들의 실력이 날로 성장한 덕분에 종합선수권 등 국내 경기도 정말 흥미진진할뿐더러, 앞으로 두각을 나타낼 재목들의 어린 시절을 미리 보는 것은 숨겨진 진주를 발견하는 것처럼 기쁜 일이기도 하다.

피겨의 비시즌인 봄과 여름에는 아이스쇼가 기다린다. 음악의 다양성과 화려한 안무, 조명과 영상이 어우러져 경쟁경기와는 또 다른 피겨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유명한 선수들의 연기를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은 황홀한 경험이다.

피겨는 점프와 스핀, 스텝 하나하나의 동작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음악에 대한 해석을 동반하는 작품으로 탄생한다는 점에서 가히 예술적이다. 순수하고 여린 한 마리 새가 날갯짓하는 듯한 '종달새의 비상'부터 강렬한 카리스마의 '죽음의 무도'나, 음악이 살아나 스스로 춤을 춘다면 마치 이와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하게 되는 '거슈인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 등 김연아 선수가 선보인 피겨프로그램들은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딱딱한 얼음 위에 수없이 넘어져가며 연습한 결과이자, 정석과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일관된 태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내게 더욱 깊은 감동을 주고 존경의 마음마저 갖게 하는 것 같다. 결국 그것은 하나의 퍼포먼스가 주는 감동을 넘어, 하나의 삶이 주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5월 5일, 김연아 선수의 현역 은퇴를 기념하는 아이스쇼가 있었다. 나는 맨 앞줄에 앉아 그녀를 보는 행운을 누렸다. 피날레를 앞두고 연아 선수의 영상이 나오자 피겨와 함께한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가슴이 먹먹해져왔다. 사법연수원의 치열한 경쟁이 힘겨울 때 고된 훈련 속에 올림픽을 준비할 김연아 선수를 생각하며 힘을 내던 날들, 잠들기 전에 예전의 명작들을 돌려보며 지친 하루하루를 마감하던 날들, 그녀의 복귀 결정에 감동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꼈던 순간,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보며 눈물 흘리던 순간까지. 그 모든 시간 동안 내게 큰 감동과 행복을 주고 위로가 되어준 김연아 선수에게 감사한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갈 날들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Adios, Grac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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