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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말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은빛 '파빌리온'에 심장 요동 - 영국 런던

김서현 변호사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면, 말씀 이전엔 아마도 상상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 인생은 어쩌면 우리가 말 한 대로 만들어지고, 우리가 상상한 대로 펼쳐지는 지도 모르겠다. 변호사로 처음 사회에 첫발을 디딜 무렵. 어느 잡지에서 뉴욕의 멋진 여변호사에 관한 기사를 읽고 선망을 품은 적이 있다. 열심히 일하고, 한 달 씩은 인도에 가서 영성수련을 하는 꿈같은 삶에 관한 기사였다. 한 달씩 휴가를 간다는 것이 우리 현실에서 가능이나 한 일인가. 불가능 한 것이라도 꿈꾸는 건 나의 자유이므로, 나는 상상하고 꿈 꿨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하리라고.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2013', 일본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가 디자인했다.

바쁘게 일하면서 한동안 그러한 꿈을 꾼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이지 꿈같이 이루어졌다. 작년 5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세계여성지도자대회(Global Summit of Women)에 참석한 후, 난 영어ㆍ불어 유창하게 말하기 10년 프로젝트를 세웠다.(부끄럽게도 지난 1년을 허송세월 했다.) 더불어 한 도시 한 달 체류하기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구체화 되었다. 10년 이상 일을 했으니, 난 나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다. 1년 해외연수는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고, 어떤 형태이든 쉼표는 필요했다. 궁리 끝에 나는 매년 여름 한 달, 겨울 한 달 해외체류를 작정했다. 인생엔 때로 무모한 듯 보이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 첫발자국이 런던 1달 체류였다. 아는 지인들과 런던에서 이루어지는 '아트인런던'(ARTINLONDON) 1주 과정을 밟기로 했는데, 나는 3주 미리 런던에 가 있었다. 혼자 있는 동안 난 이전 여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 공원에서 한가롭게 책읽기, 마트에서 장보고 밥해먹기, 동네 산책하기 등 일상적인 생활을 했다. 아트인런던을 주최한 큐레이터 후배 덕분에 여행자들은 갈 수 없는 곳도 많이 다녔다. 런던에서 20년 이상 산 후배는 런던에서도 핫한 장소, 멤버십만 갈 수 있는 곳, 런더너들이 정말 좋아하는 식당 등에 데리고 가주었다. 이전 여행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런던의 속살을 보았다.

운 좋게도 에든버러 페스티벌 개막 즈음 축제도 다녀왔다. 난 축제에 대한 기대보다 에든버러 기차여행이 그리웠었다. 지난 해 에든버러 축제에는 한국 현대예술 3작품이 초대받았다. 그 중 '백남준 회고전'(에든버러대학교 탤봇 라이스 갤러리)과 어셔홀 광장에 설치된 김형수교수의 '미디어 스킨'을 보고 왔다. 미디어아트 창작단체 와이맵(대표:김효진)의 '마담프리덤'은 축제 때 못보고,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관람했다. 한국 현대예술이 에든버러 인터내셔날 페스티벌의 중심에 있었고, 특히 부부(김형수, 김효진)의 예술작품은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미리 소개를 받아 간 김형수 교수 덕분에 오프닝 콘서트 관람 등 짧은 시간에 풍성한 축제를 누리고 왔다. 기대 이상의 호사였다.

주요 미술 콜렉션, 건축 등 감상
잠자던 내안의 예술혼 깨워

한국 예술품도 페스티벌 중심에
백남준·김형수 작품 엄청난 호평

현대 미술 6만점을 보유한 런던 도이치뱅크 콜렉션을 방문한 김서현(법무법인 세창, 사법연수원 32기) 변호사.

에든버러에서 돌아 온 다음날부터 아트인런던 과정이 시작되었다. 23명이 켄싱턴호텔에 머물며, 런던의 주요미술 콜렉션과 건축, 디자인 등 문화콘텐츠로 가득한 런던을 공부했다. 마치 구겨진 종이가 펴지는 것처럼, 인식의 지평이 넓혀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내 몸의 세포들 하나하나가 깨어났다. 서펜타인 갤러리(하이드 파크 켄싱톤 가든 내에 위치) 옆 잔디 마당에 설치된 파빌리온 앞에서 나는 내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상상한 이상의 삶이 나에게 왔다고 느꼈다. 난 런던에 거의 한 달째 체류 중이었고, 호리병에서 요정이 나오듯 내안에 숨어 있다 튀어 나온 예술혼을 만났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매년 최정상급 건축가들이 혁신적 디자인의 파빌리온을 선보이는 프로젝트이다. 내 가슴을 마구 뛰게 한, 2013년 파빌리온은 일본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 작품이다. "건축이 자연과 얼마나 다르고, 어떻게 자연의 일부분이 되는지, 또는 자연으로 융합되는지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자연과 인공적인 것 사이의 경계는 무엇인가."라는 건축가의 생각이 디자인으로 나타나 있다. 매우 가볍고 구름 같은 반투명 외양을 가진 구조물은 눈의 결정체 같기도 한데,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 와 초록 정원 위에 하얗게 빛을 발하며 서있었다. 나는 그 빛에 사로잡혔다. 예술 작품을 보면서 받은 가장 강렬한 느낌이었다. 현대미술 6만점을 보유한 도이치뱅크 콜렉션도 잊지 못할 경험이다. 시니어 큐레이터 알리스터 힉스를 포함한 6명의 큐레이터가 매년 새 작품 선정을 하는데, 도이치뱅크가 현대미술의 흐름을 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셔날, 사치 갤러리나 테이트모던에서 나아가 좀 더 디테일한 깊이로 문화예술을 향유한 일주일이었다. 일정 마지막 날 그동안 각자 찍은 사진 세 컷씩을 출품해서 콘테스트를 했다. 유명사진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던 분 등 3명의 예술가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내 작품 한 점을 꼽았다. 좀은 엉뚱한 "경청"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나는 그렇게 런던에서 아티스트로 데뷔했다. 아트인런던을 마치고, 길거리 포스트 조차 예술인 파리를 들러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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