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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건설적 분노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잔인한 4월이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하염없이 슬프다가도 갑자기 화가 나기도 하는 등 감정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문득 작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총, 균, 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라는 책이다. 위 책에서는 뉴기니 고원지대 부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통사회', 즉 인류의 조상이 수만 년 동안 영위해 온 수렵채집 등의 방식에 따라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소규모 사회의 가치 중에서 현대에도 되새겨 보아야 할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이른바 '건설적 편집증(constructive paranoia)'을 주목할만하다. 전통사회의 사람들은 현대인이 보기에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뉴기니의 한 섬에서 본토로 돌아오기 위해 젊은 선원들이 모는 배를 탔는데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약 2시간 동안 물속에서 뒤집힌 배에 의지한 채 공포에 떨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후 만난 뉴기니 사람으로부터 자신도 위 배를 타려고 했으나 선원들의 태도와 배를 다루는 실력을 보고는 좀 더 기다렸다가 다른 배를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현대인은 전통사회의 구성원이 경험으로 습득하였던 것보다 위험을 잘못 평가할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예를 들면 지속적인 방지노력에 따라 사고가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고 하여 그 위험이 심각하지 않은 것이 절대로 아니고, 개인이 통제할 수 있을 듯 보이는 일상적 위험(자동차 여행)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테러리스트)보다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전통사회의 갈등 해결방식도 언급한다. 어느 뉴기니인이 운전 도중 길을 건너던 소년을 치어 사망케 한 사건에서 운전자의 직장 상사는 사적 보복을 막기 위해 운전자를 격리한 후 먼저 소년의 장례식에 돈과 음식 등을 지원한다. 운전자를 제외한 해당 회사의 전 직원은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보상 의식'에 참여하여 사죄의 말을 전달하고 유족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가해자 측의 태도에 만족한 유족들은 가해자를 용서하고 추후 합의된 보상금을 받음으로써 갈등은 해결된다.

현대 문명이 이루어낸 발전의 성과는 화려해 보이지만 인류가 지구 상에서 살아온 전체 시간에 비추어 보면 그러한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는 극히 짧은 순간일 뿐이며 그 성과 역시 매우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소규모 부족사회에서 개인적,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던 위험회피와 갈등해결이라는 기능 대부분은 현재 국가의 공적 책무가 되었지만, 그 본래 특성은 절대 변하지 않았고, 그러한 본질에 대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각과 노력만이 이를 올바로 작동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자괴감과 분노는 일시적 감정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건설적으로 발전하여 제대로 된 위험관리와 갈등해결 시스템 마련을 위한 사회적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