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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작년의 가난(去年貧)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사계절이 혼재된 봄날, 법조타운에서는 향엄지한(香嚴智閑 ?~898)선사의 시(詩)가 들린다. 거년빈 미시빈(去年貧 未是貧, 작년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네) 금년빈 시시빈(今年貧 始是貧, 금년의 가난이 진짜 가난일세) 거년빈 무탁추지지(去年貧 無卓錐之地, 작년에는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빈 추야무(今年貧 錐也無, 금년에는 송곳마저 없네).

10년 전 법조인의 수가 적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늘려온 결과 이제는 실제 법조인이 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변호사 수 확대와 더불어 고시생 문제, 세계화, 전문화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던 로스쿨제도 도입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당시에 미처 고려하지 못했거나 예측하지 못했던 현상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첫째, 법조인의 수를 계산할 때 미국의 국민 1인당 변호사수와 한국의 국민 1인당 변호사 수를 비교하여 우리나라가 턱 없이 숫자가 부족하다고 통계분석을 하였는데, 사실 한국에는 법조인 내지 법률전문직이 변호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즉, 법무사, 변리사, 노무사, 세무사, 관세사 등 각 전문 분야의 법률전문가도 있다. 이들을 더하면 한국의 국민 1인당 법조인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변호사 못지않게 활동하고 있는 다른 전문자격사의 존재와 사회적 기능을 무시하고 변호사만 법조인으로 계산한 것은 잘못이다.

둘째, 법률서비스 수요를 예측할 때 지속적인 성장을 전제로 계산을 하였으나 사실 10년째 불경기이다. 경기가 급속한 하강 국면일 때 일시적으로 분쟁적 법률서비스 수요가 늘어 날수도 있지만, 경기가 지속적으로 불황일 때에는 오히려 수요가 더욱 크게 줄어드는 법률시장의 특징을 고려하지 못했다. 일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호황기 내지는 확장 국면이라야 전체적 법률서비스 수요가 늘어난다.

셋째, 법률시장의 국제개방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였다. 거대한 외국계 로펌의 상륙에 이어 토종 대형로펌이 진취적이기보다 하향식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중형로펌이 개인사무실의 업무를 수주하고, 개인변호사는 법무사, 변리사 등 타 직역의 직원과 업무까지 침범하는, 도미노 현상으로 법조계 전반에 걸쳐 파장과 갈등이 심하다.

지한선사의 선시(禪詩)는 빈틈없는 완전한 계합(契合)을 읊은 오도송(悟道頌)인데, 법조계가 오죽 힘들었으면 작년 가난은 가난도 아닌 것으로 아우성일까. 법조계에는 법조 도인이나 법조 선비도 있지만 법조상인도 있어서 항산항심(恒産恒心)의 이치상 기본적 품위와 국민의 신뢰를 지킬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즉, 법조인 양성제도에 관하여 법조인의 개념정립부터 다시하고, 다음으로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가를 꼼꼼히 살펴보고, 나아가 법조인이 되려고 하는 수험생들의 진로를 부모된 심정으로 함께 고민하면서 재검토를 해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