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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희망의 법원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최근 일본에서는 '절망의 재판소(絶望の裁判所)'라는 책이 논픽션 부문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학 교수로서 동경대학교 법학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1979년 이래 동경지재, 최고재판소 조사관, 사무총국(우리나라의 법원행정처) 등을 거친 이른바 엘리트 재판관 출신인데 33년간 근무하던 재판소를 떠나 내부고발 형식으로 자신이 목격한 일본 사법부의 문제점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민사소송의 재판관은 화해만을 거듭 강요하는데 비공개 장소에서 일방 당사자를 번갈아 설득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여 당사자를 불안에 떨게 한다. 어렵사리 판결을 받아도 판결문은 길기만 할 뿐 극히 형식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형사 절차에서는 변호인의 접견이 제한된 채 구속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허위자백의 유혹에 시달리는데, 후일 공판정에서 호소하려 해도 검찰관 쪽의 의견에 경도된 재판장은 이미 알고 있다면서 제지한다. 무죄판결의 가능성은 극히 낮다.

재판관의 관심은 오로지 사건처리, 즉 사건을 '떼는' 데에 있다. 재임용 심사 등을 통하여 인사권을 틀어쥔 사무총국의 엄밀한 통제하에 극도로 관료화된 조직은 마치 수용소 군도와 같다. 각급 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은 사무총국의 지침에 맹종하면서 기수별, 직급별로 실험용 쥐의 경주와 같은 극심한 출세경쟁체제에 편입되는데 매월 통계에 반영되는 사건처리능력이 중요하다.

저자는 이처럼 자신의 기본적 인권을 박탈당한 재판관들이 국민의 인권을 지켜줄 리 없다면서 최근 재판관의 음주사고, 성범죄, 조직 내 성희롱 등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폐쇄적이고 낡은 조직구조와 지나친 동질감, 자기중심의 유아적 사고, 공감능력 부족, 자기규제와 억압, 표리부동 등으로 대표되는 재판관 특유의 정신 병리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전면적 법조일원화를 제시한다. 나아가 과거 한국은 일본의 법학과 사법제도를 따르던 나라였으나 이제는 전자제품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사법제도도 일본이 한국을 따라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올해는 카프카가 소설 '소송'을 집필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찾아간 법원은 수많은 사람이 아무런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고루하고 무거운 공기가 숨통을 눌러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다. 우아한 안내 담당자만이 법원 직원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응대하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법원 고위직에 연결하기 위해 유명 변호사와 중개인을 통해 애를 쓰지만 결국 자신의 죄명도 모른 채 처형된다.

100년 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나 현재 일본의 법원은 여전히 일부 국민을 절망하게 하는 측면이 있는 듯하고, 이러한 현상은 사법제도의 개혁이 고통스럽고 어려운 과정임을 깨닫게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법관인사를 포함한 법조인양성제도, 각종 재판제도, 심급구조 등의 개선 작업이 제대로 된 결실을 봄으로써 모든 국민이 법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