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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실증주의와 법률의 흠결

김대휘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법실증주의는 자연법론의 반대개념이지만, 그 개념의 폭은 다양하다. 경험의 실증성에 주목하면 법사실의 탐구를 하는 법사회학이나 법현실주의 등도 널리 그 범주에 포함되지만, 통상 실정법만을 대상으로 하는 법률실증주의를 말한다. 하트(Hart)가 드는 법실증주의의 징표는 다음과 같다. "1) 법은 도덕이나 정치현실로부터 독자성이 있다. 2) 법과 도덕, 실정법과 정의는 분리된다. 3) 임의의 내용도 법이 될 수 있다 -- 법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4) 제정된 법만이 법이고 제정된 이상 효력을 가진다." 법실증주의는 법이념에의 지향을 단념하는데, 심헌섭 교수는 이를 '법철학의 불임수술'이라고 한다. 법률실증주의의 극단인 개념법학은 법을 개념논리의 순수한 산물로 본다. 직업적으로 훈련된 법률가는 조직적으로 구성된 개념피라미드로부터 모든 상정 가능한 사건에 대한 판단규칙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법률의 해석은 외견상 순수 논리적 작업이고, 사실상 비정치적으로 작업하는 법률가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나 실정법인 법률은 완벽하지 않고, 법률의 흠결은 법실무에서 예외가 아니라 원칙이다. 개념법학자인 베르크봄(Bergbohm)은 "흠결은 실정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추구자에게 있는 것이며, 거기서는 규범이 아니라 지식의 보충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하지만, 흠결개념은 법원에 의한 법정책적 규범설정의 정당화 수단이고, 사법입법의 입구가 되는 것이다. 법률에 흠결이 있는 어떤 경우에도 법원은 법을 찾아야 하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 판결 결과는--특히 최종심의--법설정적 기능을 한다. 여기서 법관의 법형성이 시작되고 이는 법치국가적인 재판거부 금지에서 근거 지워지는데, 법률의 흠결보충은 단지 예외적으로만 허용되는 법률수정 내지 회피와 구별된다.

흠결은 전통적으로 '법률의 계획에 반하는 불완전성'으로 정의된다. 계획된 불완전성의 예로는 일반조항이나 불확정개념의 경우가 있고, 법률이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계획 위반성이 없기 때문에 흠결이 보충되어서는 아니되고 단지 반대해석만 허용되며, 또 아예 법이 개입하지 아니하는 영역도 있다.

법률 실무가는 현행법률에 구속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법실증주의자일 수밖에 없지만, 입법자가 만드는 법률체계는 매우 불완전하고 위헌적인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헌법재판을 통하여 시정될 수 있지만, 법률의 불완전성은 법관의 흠결보충을 통한 법창조를 요구한다. 그 방법은 법관의 주관적 법정책이 아니라 법체계의 근저에 있는 법이념에 따라 그 시대의 법현실을 고려하고 역사적, 비교법적 고찰을 통한 판례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민법에 단 한 개의 조문만 있는 상속회복청구와 같은 법제도는 판례법을 통한 법관의 흠결보충을 요구하지만, 법률규정이 없다고 반대해석에만 머문다면 '교조적 법실증주의'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