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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불신사회에서의 전자개표기의 문제

정태호 교수(경희대 로스쿨)

자유민주주의는 선거를 먹고 산다. 임의의 선거가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이 체제의 생명의 양식이다. 선거운동 과정은 물론 투·개표 관리도 공정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에서 승리한 정권도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처럼 정치분열이 심각하고 불신의 골이 깊은 사회일수록 투·개표 관리의 최고가치는 신속성이 아니라 정확성·투명성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투·개표관리는 신속성·편리성을 앞세우며 이 원칙에 역행하고 있다.

이명박정권 하의 선거관리는 자주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사건의 실체가 개운하게 밝혀지지 못한 중앙선거관리위회(이하'선관위') 서버에 대한 디도스 공격 사건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멀쩡한 철제 투표함을 종이 박스함으로 교체한 뒤 지난 총선에서 말썽이 생기자 대선에서는 다시 플라스틱함으로 교체하였다. 세금 낭비의 전형이다. 더욱이 이 새 투표함도 큰 허점을 안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전자개표기 사용은 더욱 큰 불신의 대상이다. 선관위는 그 동안 이 기기를 '투표분류기'로 지칭해 왔다. 그러나 작명이 본질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본래 전자개표기는 재·보권선거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선관위 규칙에 의거하여 총선·대선에서도 이를 사용하였다. 18대 대선 후 20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수개표' 실시를 청원하였으며, 일부 시민이 제기한 대선 무효소송의 핵심 근거도 법률적 근거 없는 전자개표기의 사용과 수개표의 형식화였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전자개표기의 개표 시연에서 오류가 발생하며 불신만 키우고 말았다.

선관위는 의원입법의 형식으로 2014년 1월 법개정을 통해 공직선거법 제178조 제2항에 전자개표기 사용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개정된 법에서도 수개표가 주이고 전자개표기는 보조이다. 전자장치의 오류와 조작의 위험성을 감안한 것이다. 그런데 선관위는 전자개표기를 신형으로 교체할 방침이란다. 그렇다면 현 전자개표기에 어떤 하자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니라면 보조기에 불과한 전자개표기를 많은 세금을 들여 교체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해서 현 개표 방식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 근본 원인이 컴퓨터에 연동되는 전자개표기의 조작 위험성에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을 잠재우는 지름길은 투·개표에서 신속성이 아니라 정확성·개관 가능성·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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