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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이야기

(35) 능양시집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웃음이 절로 날 때가 종종 있다. 옛글 중에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이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도 있겠지만, 필자 같은 경우는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서위(徐渭), 이탁오(李卓吾), 장대(張岱) 등의 글을 읽을 때가 가장 흥이 났다. 그 후에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하여 감탄하며, 이해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의 글들을 열심히 찾아 읽었었다. 그 중에 자주 떠오르는 글 중의 하나가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였다.



달사(達士)와 속인(俗人)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조카 능양 박종선(朴宗善:1759-?)의 시집에 쓴 서문이다. 하여 얼마나 시를 잘 지으면 이런 찬사를 들을까 하여 한번 이 시집을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시집은 이름만 전하고 책은 어디에도 소장하고 있는 곳이 없었다. 어느 날 대전에서 고서점을 하는 한 선배가 찾아와서 몇 종류의 책을 보여준다. 그 중에 16책으로 된 한 질의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이 책이 '능양시집(菱洋詩集·사진)'이 아닌가?

능양은 박종선의 호로, 크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박종선은 영조(英祖)의 사위이자 연암의 삼종형인 박명원(朴明源: 1725-1790)의 서자(庶子)로 자는 계지(繼之), 호는 능양이다. 서자라는 한계 때문에 규장각(奎章閣)의 검서관(檢書官)과 음성현감(蔭城縣監)이라는 말직에 종사하다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그러나 같은 서자라도 영조임금의 부마(駙馬, 사위) 집이라 아정 이덕무(雅亭 李德懋: 1741-1793)와 같이 크게 어렵게 지낸 것 같지는 않다.

검서관은 학문은 있으나 문벌이 미약하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을 등용하기 위해 정조(正祖)가 규장각을 설치하면서 특별히 만든 직책인데, 이들이 정조 당대에는 많은 일을 담당하여 영정조에 새로운 문화를 이루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 시집은 전체 13권13책으로 편집되었고 아주 해정한 해행(楷行) 글씨로 쓴 필사본이며, 아마도 출간하려고 정리한 판하본인 듯하다. 1권 첫머리에 연암의 서문이 있고, 맨 끝에 즉 13권 말미에는 "67세 할아버지가 신묘년(1891년?) 여름에 이 책을 써서 손자 순에게 주니 보배롭게 간직하라(翁年六十七歲辛卯夏書與舜孫以爲珍藏)"는 필사기가 적혀있다. 이는 능양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시고를 정리하여 손자에게 준 것으로 짐작하나 자세한 고증이 필요하다.

처음으로 발견한 '능양시집' 내용을 여기에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장시 중에서 사료가 될 만한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1. 금강산기행시(金剛百論藁, 제3권 전권) 2. 이덕무, 박제가, 서이수 세 검서관을 애도한 시(三哀詩, 5권, 각 2수) 3. 경복궁의 역사(景福宮感舊恭述, 6권, 12수) 4. 대마도로 떠나는 통신사에게(7권, 30수) 5. 서울의 세시풍속(京都歲時詞, 8권, 40수) 6. 기생을 보내며(送姬詩, 8권, 30수) 7. 기생을 맞으며(邀姬詩, 8권, 8수) 8. 추사 김정희에게 부침(寄金元春, 10권, 8수) 9. 도연명의 시에 화답함(和陶詩藁, 11권, 전권) 등이다. 이 중에 금강산과 도연명의 시에 화답한 시는 단행본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특히 경복궁과 서울의 세시 풍속을 읊은 시는 서울 사료로의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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