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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개인의 발견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카드회사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 이후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었음에도 개인정보보호법제와 조직체계가 여전히 복잡하고 파편화된 채 머물러 있는 법적 현실과 주민등록번호, 공인인증서 등 유례없는 보안환경이 맞물린 특수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각계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만 이미 비교법적으로 매우 강력한 편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체계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또 다시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현재의 난맥상에 대한 적절한 치유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질병에 이르기 전에 미리 치료하였다는 편작(編鵲)의 형(兄)의 고사가 나타내는 바와 같이, 법(法)으로 사후에 통제하기보다 예(禮)로서 분쟁을 예방하는 것을 선호하였던 과거 유교문화의 긍정적 측면을 현대적으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의 앤 카부키언(Ann Cavoukian) 박사가 1990년대부터 주창한 'Privacy by Design'(PbD)이라는 개념은 현재 세계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PbD가 제시하는 7개의 기본원칙 중 제1원칙은 사후 방어적(Reactive & Remedial) 대응이 아닌 사전 방지적(Proactive & Preventative) 접근이다.

앞으로 개인정보는 금융기관 등 민간 영역을 넘어 공공 영역에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으로 수사와 재판은 개인정보의 수집과 처리가 법률로 폭넓게 보장되는 영역이라고 해석되었으나 그 허용 범위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법원은 하급심 판결서의 전면 공개와 법정 녹음 및 재판 생중계 등을 통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개인정보의 문제가 그 추진 속도를 더디게 하고 있다.

가능한 해법 중 하나는 수사와 재판에서 개인정보 최소수집의 원칙이 반영되도록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PbD 제3원칙, Privacy Embedded into Design). 예컨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민감정보를 사전에 무차별적으로 수집하여 그대로 기재하는 피의자신문조서의 작성 방식이나 성명 외에 고유식별정보 등 개인정보를 판결서에까지 상세히 표시하는 실무는 재검토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존 실무는 잘 정비된 주민등록체계와 전자정부시스템에 따라 공공기관이 각종 개인정보를 내부에 전자적 형태로 충분히 보유하고 있고 또 이를 합법적으로 이용·공유할 수 있는 실정에서는 불필요한 것이다. 법정 녹음과 재판 생중계 또한 허용 전제조건으로 개인정보를 위한 상세한 지침이 마련된다면 재판부와 당사자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예측 가능성의 증대에 따라 제도를 조기 정착시킬 수 있다.

고골의 소설 '외투'에서 외부세계의 사정에는 아무런 관심 없이 오로지 같은 내용의 공문서를 글자 그대로 정서하는 일에만 삶의 보람을 느끼던 하급 관리인 주인공은 미루고 미루던 새 외투를 뒤늦게 장만해 보려다가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추위가 닥치기 전에 미리 외투를 준비하여 두는 평범한 삶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