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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선덕여왕

강태훈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어린 시절 구독한 학습지에는 선덕여왕과 모란꽃 이야기가 "중국에서 모란 꽃씨를 보내왔는데 공주는 그 꽃에 향기가 없을 거라고 하였다. 꽃씨를 심어 보니 과연 향기가 없었다. 임금이 공주에게 어떻게 향기가 없는 것을 알았냐고 물었더니 공주는 꽃씨와 함께 온 그림에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금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모두 공주의 영리함에 탄복하였다"는 식으로 쓰여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위 이야기를 선덕여왕의 공주 시절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를 보니 "당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의 세 가지 색깔로 그린 모란꽃 그림과 함께 꽃씨 석 되를 보냈다. 왕은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필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뜰에 심도록 명하여 꽃이 피고 지기를 기다렸더니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 신하들이 왕에게 모란꽃에 향기가 없는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그림에 나비가 없었으므로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고 하였다" 라고 쓰여 있었다. 즉 모란꽃 이야기는 선덕여왕이 왕이 된 후에 있었던 사건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공주 때의 일이라고 했던, 어린 시절에 봤던 학습지 내용은 엉터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얼마 후 삼국사기 선덕여왕 편을 읽어 보니 놀랍게도 학습지의 내용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단지 아이들 학습지에 단편적으로 실렸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더욱이 불후의 고전 삼국유사의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에 실렸던 이야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였던 것이다.

혹시 그동안 진행해 온 재판에서도 이처럼 외관이 허름하다고 하여 그 내용까지 부실하다고 판단한 경우는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당사자, 증인 등 소송관계자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거나 허술하다고 하여 심지어 그들의 직업이나 행색만으로 그들의 진술을 가볍게 배척하지는 않았는지 반대로 그들의 외모나 직업이 그럴듯하다거나 진술이 논리적이라는 점 때문에 선뜻 믿어 버린 적은 없었는지, 나아가 어떤 사건의 전개가 과거에 판결한 다른 사건 또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것에 무리하게 끼워 맞추어 재판을 진행한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 되물어 본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