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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절반의 성공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지난해 12월 26일 사법연수원 42기 출신 신임법관 32명의 임명식이 있었다. 같은 재판부에서 근무한 재판연구원도 임명장을 받게 되어 흐뭇한 마음이었는데, 일부 보도에서 신임법관 중 여성이 87.5%에 달한다는 사실을 계속 부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다소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지난해 4월 1일 임명된 신임 법관 57명 중에는 군법무관 출신이 대다수여서 여성이 3명에 불과하였는데 그때는 법관의 성별이 주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편집자 해나 로진은 '남자의 종말(The End of Men)'이라는 과격한 제목의 책에서 가족 중심 사상에 물든 아시아의 언론매체에는 '파워우먼'의 출현에 대해 적대적인 기사로 가득하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세계 여러 나라 중 공정한 시험을 통한 능력주의와 낡아빠진 가부장제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최전선으로 한국을 '선정'한 후 직접 방문하여 조사한 한국 '워킹맘'의 열악한 현실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최근 여성가족부 등이 발표한 '여성 잠재력 활용지수'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공정한 진입 기회' 수치는 조사대상 25개국 중 1위임에 반해, '지속 가능한 근무환경' 수치는 압도적 꼴찌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작년 말에 첫 여성 검사장이 탄생하는 등 법조계에도 '여풍(女風)'이라고 명명된 현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폭발적으로 증가한 여성 인력의 지속 가능한 근무환경 마련에 대해서는 특별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리 여성 법조인의 지속적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지나치게 길고 형식적인 사무실 근무시간이다. 가족의 희생을 토대로 하거나 '남성적 특징'을 더 함양하는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라고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제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현재 명목으로만 머물고 있는 유연 근무제나 스마트 워크 등의 제도를 여성 인력을 위해 실질화하는 과감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법원은 재판 당일을 제외하면 탄력적 근무가 가능하고 직무공유제를 시행할 수 있는 형태의 업무도 있다. 고도화된 전자소송 인프라는 일과 가정의 균형이 아닌 통합까지 도와줄 수 있다. 공직기강에 대한 불안감이나 파트타임에 대한 선입견을 논하고 있기에는 세상의 변화속도가 너무 빠르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제1의 성'에서 여성이 전체적 사고방식(Web thinking), 유연성, 공감 능력 등으로 법조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진화생물학적 견해의 과학적 근거는 의심스럽지만, 이제 여성 인력 없이 법조계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기는 어렵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자신이 가진 분홍색 물건 수십 개를 늘어놓고 앉은 여자 어린이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파란색 물건을 자랑하고 있는 남자 어린이들을 찍은 사진작가 윤정미의 프로젝트는 공포감마저 느끼게 한다. 신석기 농업혁명 때부터 인류에게 형성되어 왔다는 뿌리 깊은 선입견을 극복하고 한국의 법조계가 앞장서서 구성원의 성별이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른바 '퍼플칼라'의 시대를 열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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