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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무사, 생사가 문제로다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시골 겨울풍경의 하나는 메주 띄우기다. 가을에 수확한 콩을 삶아 덩이를 지어 처마에 매달아 놓았다가 일정 시기가 지나면 골방 구들목에 쌓아두어 띄운다. 쿰쿰한 그 냄새가 아련하다.

황산덕(1917~1989)박사의 '법철학강의(1983년)'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법(法)'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말에 의하여 그렇게 불리는 '그 무엇'은 대상(對象)으로 가지고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하면, 법으로서의 실체를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하며, 그것을 가리키기 위해 '법'이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그러한 '그 무엇'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 만일 그러한 실체가 존재한다면(존재의 문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고(인식의 문제), 그처럼 알려진 그 실체(實體)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내용의 문제)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동문수학한 사람들이 모여 법조계와 법조타운을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중국 후한 말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조조의 위(魏), 유비의 촉(蜀), 손권의 오(吳) 이렇게 3국시대가 펼쳐진다. 위나라 조조(曹操)에게는 뒤를 이은 조비(曹丕)와 그러지 못한 셋째 아들 조식(曹植)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유명한 시인으로 3조(三曹)로 불리웠다. 조식은 문학적 재주가 뛰어나 아버지의 총애를 받은 반면 형인 조비(曹丕)의 미움을 샀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후 동생을 해칠 요량으로 "일곱 걸음 안에 시를 한편 지으라"고 하고 못 지으면 극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조식은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 한 수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煮豆燃豆箕(자두연두기, 콩을 삶는 데 콩대를 태우는 구나)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가마솥 안에 있는 콩이 울고 있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上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바로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詩)이다. 조비는 이 시(詩)를 보고 부끄러워 동생을 살려줬다고 한다.

법무사는 참으로 소중한 직업이다. 상류의 유복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직업으로나 만나는 사람들로나 서민과 중산층에 가장 가깝게 살고 있으며, 노상 서민의 법률생활과 같이한다. 그러한 특징을 보고 1967년에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에서 '한국의 법조인 - 사법서사(법무사)를 중심으로-' 라는 연구서를 출간하였는데, 그 저자 중 한사람인 미국의 법학자 제이 머피박사는 그 책에 '한국의 법무사'를 매우 훌륭한 제도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 전자등기연계시스템을 기화로 대형 금융기관과 몇몇 법무법인에서 법무사의 천직인 전자등기 분야를 독점하려 하고 있다. 그 발주를 하는 금융기관을 상대로 법무사협회가 수차례 항의 방문을 하고 개선을 요구하였으나,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갑'의 지위에서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한 행위는 법무사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변호사에게도 큰 피해가 간다. 법에도 눈물이 있듯이 경영에도 상생이 있다. 어찌 그리 매정한가. 법무사와 법무사제도, 이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