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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정(Ⅵ)-전자법정

강신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대표)

요즘 법정에 가면 파워포인트(PPT) 자료 등을 이용한 구술변론을 자주 볼 수 있다. 가히 구술변론의 경연장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료도 충실하여지고, 변론의 내용도 훌륭하다. 이러한 자료를 이용하여 변론을 하는 변호사들도 연예인 못지않게 뛰어난 용모와 언변으로 법정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외국 영화나 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구술변론중심의 재판이 이제 국내에서도 실현되고 있어 가슴이 뿌듯하고, 이제 우리도 법조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가지게 된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전자 정보화됨에 따라, 법정에도 전자정보의 영향이 빠르게 파급되고 있다. 한때 법원에서는 비디오(Video) 시설을 이용한 원격 재판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제 PPT 자료 등을 이용한 변론이 가져오는 효과를 나름대로 한번 돌아보고자 한다. 우선 그 장점을 먼저 보자.

첫째, 그동안 복잡한 내용의 사안을 설명하기 위하여는 준비서면에 굵은 글씨나 밑줄을 긋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 변론의 내용을 시각화(Visualize)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주장을 요약하여 정리하고 이를 시각화함에 따라 변론의 취지를 쉽게 법원에 전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방대한 서류 속에 묻혀있는 증거를 법정에서 주장과 연계하여 직접 화면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되어, 주장과 증거를 연계한 변론을 좀 더 용이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변론 내용을 입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종전에는 준비서면에 메마른 글씨로 주장을 정리하고 변호사가 법정에서 공허한 구술변론을 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법정에서는 PPT자료 등으로 변론 내용을 요약하고, 요약 내용을 컬러(Color)화, 슬라이딩(Sliding), 팝업(Pop-up) 등의 기법으로 입체적으로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되어있는 서증의 내용도 확대하여 제시할 수도 있다.

셋째, 법정에서 쌍방간에 구술토론이 활성화되었다. 상대방의 PPT 자료 등을 제시하면서 그 주장의 허점을 지적하는 반론이 쉬워졌고, 그 반론에 대한 재반론도 용이하여졌다. 법원도 구술변론 과정에 개입하여 석명을 구하거나, 입증을 촉구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가히 살아 있는 법정을 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일의 밝은 면에는 언제나 그늘진 면이 따른다. 법정이 전자화함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전자자료를 이용한 변론의 준비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 PPT 등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변호사 등 인력이 필요하고,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디자인 감각이 있는 전문가 등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시간과 비용의 증대는 사법서비스에 대한 접근(l'acces a la justice)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부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 전자법정이 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둘째, 법정이 경연(Show)장화되어 간다. 준수한 용모와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변호사가 점점 더 변론의 호소력을 가진다면, 드라마에서 보는 외국 법정의 천박한 모습이 우리 법정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셋째, 변호사의 세대교체를 촉진시킨다. 전자정보를 다루는 데 더딘 노년의 법조인들이 설 땅이 좁아진다. 장강(長江)의 뒷 파도가 앞 파도를 밀어내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과도하게 빠른 세대교체는 법조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