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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크리스마스의 추억

강태훈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영장실질심사란 판사가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를 대면하여 심문을 하고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심문 과정에서 피의자는 직접 판사에게 자신의 무고함이나 정상을 호소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제도가 채택된 1997년 1월 1일 이후 서류로만 심사하던 이전보다 영장 발부율이 낮아졌다.

오래 전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썰렁한 심문실에 대기 중인 피의자의 영장범죄사실은 피해자를 3박4일 동안 호텔에 감금하고 성폭행을 하였다는 것으로, 증거로는 피해자에 대한 진술조서, 피의자가 소지한 가방에 있던 캠코더와 노끈, 수갑 등이 있었다.

피해자는 술 취한 상태에서 피의자의 꼬임에 빠져 호텔에 투숙하였는데, 피의자가 며칠 동안 호텔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수차례 성폭행을 하면서 캠코더로 촬영도 하고 그녀의 얼굴에 소변을 보는 등 변태적인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했는데, 그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반면에 피의자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을 하였는데 피씨방에서 우연히 피해자와 채팅을 하다가 서로 마음이 맞아 호텔에 투숙, 성관계를 가진 것일 뿐 결코 성폭행을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범행도구로 압수된 캠코더와 노끈, 수갑은 음란물을 흉내내려고 준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았고, 피해자가 주장하는 변태적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였다.

그런데 캠코더에 담긴 테이프에는 녹화된 영상이 없었으며 상해 부위를 찍은 사진에도 수갑이나 노끈에 의하여 생긴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피해자 왼쪽 어깨에 난 상처에 대해 피의자는 성행위를 하다가 흥분하여 입으로 빨아 생긴 것이라고 했다). 호텔방을 청소하던 아주머니는 피해자가 감금되어 있다는 낌새를 채지 못했다고 하였고, 피해자 스스로도 피의자와 함께 호텔 마당을 산책하거나 호텔 밖 제과점을 다녀 온 적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숙고를 거듭하다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과 초범인 점 등을 감안, 영장을 기각하였다. 그런데 며칠 후 신문에는 놀랍게도 피의자가 석방되자마자 자신을 조사한 경찰관을 찾아가 직무수행 중인 그의 뺨을 때려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이 사건처럼 실제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피의자에 대하여도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수사·재판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이를 실효성 있게 하는 제도가 영장실질심사라고 할 수 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