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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미니멀리즘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지난 12월 18일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 이에 영향을 받게 될 사회 구성원들의 후속 대응책과 보완 입법조치 등에 관하여도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는 듯하다.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으로 하여금 '양심'에 따라 심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비교법적으로는 독특한 규정으로서 흔히 법관의 주관적 신념이 아닌 '객관적' 양심이라는 취지로 설명되나, 그 객관성이 어떻게 담보될지는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이목이 쏠리고 판결에 따른 파장도 클 것으로 보이는 사건을 담당한 한국의 법관은 자신의 '양심'에 관하여 상당한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에게 '넛지(Nudge)'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진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은 미국 법관의 사고 경향을 완전주의(Perfectionism), 다수주의(Majoritarianism), 최소주의(Minimalism), 원리주의(Fundamentalism)의 4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완전주의는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이 주장하듯이 법관은 해석을 통하여 법률의 흠결을 보충하여 최선의 결과를 도출함으로써 법률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말하는 법관의 '양심'은 이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한다. 다수주의는 홈즈(Oliver Wendell Holmes, Jr.) 대법관의 견해처럼 법관 역시 편견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이상 원칙적으로 다수의 민주적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원리주의는 이를 더 극단으로 몰고 가서 스칼리아(Antonin Scalia) 대법관과 같이 법관은 법률조항의 원래 의미의 해석에만 충실해야 하며 자신의 양심에 따른 도덕적 판단을 부가하는 순간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한편 최소주의는 법관의 개인적 한계를 인정하고 가능한 한 해당 사건의 해결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내용만을 판단하는 사고방식이다. 비겁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지만 판단하지 않고 남겨 둔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는 것이고, 한 번에 기본원칙을 선언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법리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이다.

종래 발전단계에 있던 우리 사회는 완전주의에 입각한 법관을 원하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다양하면서도 쟁점이 시시각각 바뀌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분쟁의 특성에 비추어 법원은 점차 최소주의에 가까운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법률가들이 옛것의 맹신, 좁은 시야, 형식 애호, 점진적 습성과 같은 '결점'으로도 사회에 이바지한다고 주장하였고, 현대 미니멀리즘 미술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상 사물 그 자체와 이를 수용하는 관객에게 초점을 둔 것이었다. 항상 그러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현대의 분쟁을 다루어야 하는 법관으로서는 때때로 비트겐슈타인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하여는 침묵'하는 편이 더 적절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