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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정(Ⅴ)-어색한 조우(遭遇)

강신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대표)

소송을 주 업무로 하는 변호사에게 법정은 생업의 공간이다. 며칠씩 준비한 변론을 몇 분간의 짧은 시간 안에 쏟아내야 하고, 승소의 희열과 패소의 쓰라림을 맞보아야 하는 곳이 법정이다. 불과 수분 안팎의 변론이지만, 법정은 상대방이 있고 재판관이 있으며 방청석에 의뢰인이 앉아있는 어색한 공간이다. 이런 연유로 변호사에게 법정은 긴장이 요구되는 약간은 불편한 장소이다. 필자는 법대를 등지고 10여년을 보냈고 법대를 향하여 15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강산이 두 번쯤 바뀌었을 시간이지만, 지금도 법정은 편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법정에서 얻는 생활의 낙수(落穗)가 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선후배 변호사와 친구 변호사를 뜻밖에 법정에서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지방으로 재판을 하러가서, 법정에서 학창시절 함께 하숙하던 친구를 만났다. 당시의 젊은 친구는 이미 머리가 반백이 된 초로의 장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자식이 이미 법조인이 되어 법원에서 근무한다는 자랑스런 소식도 들었다. 편하지 않은 곳이지만, 법정에 자주 출입해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게 된다. 요즘은 법정에 나가는 경우가 뜸하여져 세상 소식에 둔하여 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하지만 법정에서의 만남이 언제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존경하는 선배나 친한 친구를 상대방 변호사로 만나가 되었을 때의 당혹감은 크다. 평생 은사로 모시는 사법연수원 시절의 교수를 상대방 변호사로 만나게 되었을 때 참으로 민망하다. 특히나 존경하는 선배가 당신께서 선고한 판결의 법리와 다른 내용의 변론을 할 때 듣기 거북하다. 한때 그 분이 선고한 판결을 보편적 법리로 알고 공부하였는데, 그 법리가 지금은 왜 바뀌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때 지혜의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좋은 인연을 평생 아름답게 가꾸어 가고 싶은데, 어색한 조우(遭遇)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조우하게 되면 변론 과정에서는 혹시나 말실수를 할까봐 매우 조심하지만, 법정 공방이 치열하여 갈수록 말속에 뼈가 섞이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의뢰인으로부터 당신은 왜 당차게 상대방 대리인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하냐는 불평을 들을 때는 더욱 곤혹스럽다.

이렇게 변호사로서의 지켜야 할 직업윤리와 사회적 존재로서 따라야 할 도덕률이 충돌하는 경우 처신이 참으로 어렵다. 직업 윤리에 충실하자니 세상의 좋은 인연이 하나 둘 끊어져 가는 것 같고, 도덕률을 앞세우자니 일이 점차 사라져 간다. 이를 해결할 솔로몬의 지혜는 없을까.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그 동안 법정에서 내 말 속의 뼈로 인하여 상처를 받았을 선배나 동료들에게 사과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지혜가 모자란 사람의 미욱한 언행을 너그럽게 혜량하여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