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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남아공의 추억

김성진 헌법연구관(국제조사연구팀장)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남아공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내전에 빠졌을 것이다"라는 크리글러(Kriegler) 재판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참 열리고 있던 때였던 거 같다. 지금은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겼지만, 그때만 해도 남아공 헌재는 비즈니스 건물의 3개 층 정도를 빌려 사용하고 있었다. 그 건물 1층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그날 크리글러 재판관과 그곳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며 얘기를 하던 중, 어떻게 남아공이 극심한 인종갈등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정권이양을 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크리글러 재판관은 만델라를 얘기하였다.

크리글러 재판관은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민주선거의 선거관리위원장을 했었고, 필자는 2002년 당시 그의 로클럭(law clerk)을 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가끔 그 당시 새로 짓고 있던 남아공 헌재의 공사 현장을 찾곤 했다. 남아공 헌재가 새롭게 들어설 곳은, 과거 악명 높았던 감옥이었다. 그곳에 간디와 만델라가 수감됐었다. 그곳에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헌재를 짓는 것이다. 감옥의 일부 벽을 남겨 대심판정의 벽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 공간에서 과거는 잊혀지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를 경계하게 한다.

2001년 5월 어느 밤 도착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는 무척 낯설었다. 남아공을 가기로 결심했던 이유 중 하나가, 흑인이 다수인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흑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편견을 깨고 싶었다. 공항으로 같이 근무할 동료들이 마중 나왔다. 그들이 필자를 데리고 간 곳은 시내의 한 번화가였다. 그러나 그곳에 흑인들은 없었다. 필자가 아직도 흑인이 출입하지 못하는 지역이 있는지를 묻자, 그들은 법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렇다고 한다.

필자가 그들을 가장 많이 본 곳은, 소웨토(Soweto)라는 과거 인종차별 정권 때 만들어진 흑인 집단거주지였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 속에 그들이 있었다. 친하게 지냈던 한 흑인변호사는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 날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그날이 임시 공휴일로 정해졌음에도 작은 마을의 백인판사가 변론을 연다고 하기에, 그날이 대통령 취임식이란 것을 모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판사는 "무슨 대통령(What President)?"이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정권은 바뀌었으나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2년 남짓, 남아공에 있는 동안 필자는 그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목격했다. 비록 그것이 충분히 빨라 보이지 않을지라도 과거 수십 년간 유지되었던 흔적을 평화적으로 지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중심에 만델라가 있었다. 그분의 명복을 빈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