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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언

존재의 이유

전주혜 부장판사(서울중앙지법)

"판사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형사재판을 하면서 피고인과 변호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법정에서의 모습만을 본다면 용서하지 못할 피고인들이 거의 없다.

10년 전 이혼한 후 아이들을 혼자 어렵게 키워오다 가짜 참기름을 만든 혐의로 구속된 P 피고인은, 엄마로서 밖에 남겨진 아이들 걱정에 법정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업무외 목적으로 프로포폴을 상습적으로 투약해 준 혐의로 구속된 K 피고인은 첫 재판에서 계속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숙이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건 아니냐는 질문에 변호인이 대신 대답했다. "피고인의 아버지가 암 말기십니다. 수술을 앞두고 계신데, 오늘 피고인을 보러 법정에 나오셨습니다. 수술을 앞둔 아버지를 보고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K 피고인이 더 안 되었던 건, 피고인의 부인 역시 비슷한 혐의로 몇 달 전 이미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출산 후 한달 만에 재수감된 상태였고, K 피고인까지 1심에서 법정구속되자 피고인의 어린 딸을 돌보던 피고인의 어머니마저 해리성 장애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재판을 마치고 잠시 기회를 얻어 딸을 안아 보는 피고인과 그 가족들의 슬픔과 눈물에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형사재판을 하면서 법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이 자리에 어떤 자격으로 앉아 있는가.

"피고인이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피고인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본 재판장은 이 자리에 개인 자격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와 사회와 피해자를 대신해서,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엄중한 임무를 국민들로부터 부여받고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피고인의 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무척 마음이 아프고, 피고인이 잘 되었으면 합니다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어찌 감히 인간을 심판할 수 있겠는가. 또 잘못을 깊이 뉘우치는 피고인들에게 관대한 형을 선고하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으랴. 그러나 법관은 심판을 할 권한과 의무를 국민으로부터 부여받고 국민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동정으로 마냥 관대함을 베풀 수 없고, 자의로 재판을 할 수도 없다. 재판을 하면 할수록, 법관의 무거운 소명을 새기게 된다.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