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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진실의 정도

윤배경 변호사(법무법인 율현)

미국의 인기 드라마 CSI나 NCIS를 보다 보면 세상이 풀리지 않는 비밀도, 완전 범죄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영원히 미궁에 빠질 것 같은 사건도 과학수사와 추리 앞에 100%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렇다 치고 현실은 어떠한가? 첨단 기술이 개발되고 경험이 축적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일은 남아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미궁에 빠져 있을 때 법적인 분쟁이 생긴다. 과거의 사건을 재해석해야 하는 법률가의 입장에서는 부족한 증거로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를 가리게 된다. 상대적 진실, 통계적 진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00%의 진실이 아닌 80~90% 혹은 51%의 진리에도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자주 쓴 단어가 '코드'란 말이다. 흔히 "저 사람하고는 코드가 안 맞는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전 국민이 국가 원수가 쓰는 이 새로운 단어에 전전긍긍했다. 전후 문맥으로 보아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적 방향을 가리키는 말 같기는 했다. 막상 영어 단어 중 code인지 cord인지부터 헷갈렸다. 법전, 조례 등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회 생활 상의 법도, 도덕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code가 유력시되었다. 노 전 대통령이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한 몫 했다. cord로 볼 수도 있다는 반론도 있었다. cord 역시 조직(해부학)이란 뜻이 있고 기호체계(언어학)라는 뜻이 있으므로 cord가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전기 코드(an electric cord)처럼 선이 다르면 아예 전기나 전자 제품에 꽂을 수도 없으니 "대통령과 cord가 다르면 끝"이라고 했다. 정작 노 전 대통령은 이러한 논란에 대하여 생전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진실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파티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과 세련된 중년들은 노 전 대통령이 쓰셨던 코드가 'code'라고 믿는다. 파티 초정장에 쓰인 '드레스 코드(dress code, 복장 규정)'를 무시할 때 무슨 사단이 일어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남들이 만화 주인공 복장을 하고 왔는데 본인 혼자서 정장 차림을 했다면 졸지에 '왕따'가 된다. 서둘러서 파티장을 떠나야 할 것이다. 상식적인 진실인 셈이다. 대선이 끝난 지 1년 가까이 되는데도 노 전 대통령의 'NNL 포기 발언'의 진위가 오리무중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정말 NNL을 포기하겠다고 발언했는지, 했다면 진의로 한 말이었는지는 당사자의 해명 한마디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그분이 비명(非命)에 간 지금 알 길이 없다. 대통령기록물에서 삭제된 남북정상회의록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100% 진실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정국이 난장판이 된 지금,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 가리는 것이 살아 남은 자의 몫이고 법조인의 의무다. 공개된 국정원 회의록을 접한 국민 중 절반을 조금 넘는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NL 포기가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적 진실인 셈이다. 회의록 유출 의혹을 받은 여당 의원이 뜬금없이 "노 전 대통령이 틀림없이 NNL포기 발언을 했다"고 한들 대다수 국민의 믿음을 돌리기는 어렵다. 사초(史草) 폐기 의혹에 대해서 최근 검찰 발표가 있었다. 긴 수사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고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반발했다. 상대적 진실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은 셈이다. 형사 재판에서 검찰의 입증책임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법리가 피고인들에게 다소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는 완벽한 진실의 몇 % 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