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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전시성 재판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필자가 소속된 재판부는 지난 11월 15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캠퍼스 열린 법정'을 진행하였다. 7월 5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이은 두 번째 경험이었다. 이에 대해서 학교에서 왜 모의재판이 아닌 실제 재판을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법원이 소통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행사를 개최하더니 이제는 실제 사건까지 외부로 가지고 나가 전시성 행사를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실제 변론과 다름없이 진지하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위 재판을 두고 전시성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일방적인 시각임이 분명하지만, 위 재판이 '보여주기 위한' 것임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위 재판은 법학전문대학원생들에게 재판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국 로스쿨 재학 시절 노련한 법률가들의 실제 재판 장면을 보는 것이 가장 유용하고 인상적인 수업이었고, 우리의 후배 법학도들에게도 그러한 경험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과거 우리의 법학 교육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간 지식의 두 가지 측면인 에피스테메(Episteme)와 테크네(Techne) 중 전자에 치중한 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후자 역시 단순히 도구적 실용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 현실을 규정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국민이 법조계 전반에 대하여 갖는 불만 중에는 이러한 실천지식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에 대한 굳은 신념과 올바른 실천지식을 함께 갖춘 우수한 법률가의 양성은 이제 학교뿐 아니라 현직 법률가들도 함께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무가 되었다.

다음으로 위 재판은 사회와 소통하려는 법원의 노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재판이 끝나고 마련된 질의응답 시간에 방청한 학생, 일반인들과 진솔한 생각과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기회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유례없는 갈등지수와 분쟁의 폭발 양상을 보이고 있음에도 합리적 분쟁해결 문화가 미성숙한 한국 사회에서, 오로지 '판결로만' 말하기 위해 분쟁이 무르익어 소송으로 비화하기를 기다린 후 법정에서 당사자의 변론을 '빠짐없이 경청'하고, 일체의 외부 접촉도 끊은 채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전기를 소모하면서 과중한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은 이제 우리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법부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해결법원'과 '예방과 치유의 사법'을 논의하는 현대 복지국가에서 여전히 무지몽매한 대중을 탓하는 19세기 이전 계몽(Enlightenment)의 사고 틀에 갇혀 안주할 수는 없고, 한국 사회가 원하는 공동선(共同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법원이 먼저 그 사회 속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다만 이러한 법원의 시도는 사법부 출범 이래 처음 해보는 것이니만큼 완벽하기 어렵다. 외국 모 IT 기업에서 강조한다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보다 실행해보는 것이 낫다(Done Is Better Than Perfect)'라는 경구는 이 경우에도 유효하다. 즉 개선할 점이 분명히 있더라도, 그 시도 자체만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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