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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추수동장(秋收冬藏)

이남철 법무사(서울중앙지법 외부회생위원)

세월은 빨라 계사년 일출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동(立冬)이 지났다. 가을이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영하의 날씨가 사람의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묘사(시제)를 지내러 가는 고향의 기차길, 창가에 보이는 들판에는 가을걷이(秋收)가 거의 끝나고 하얀 비닐로 싸인 짚동이 널려있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 으로 시작하는 천자문(千字文)을 배우다가 중간쯤에 까먹곤 했는데, 그 천자문에 '가을추(秋), 거둘수(收), 겨울동(冬), 감출장(藏)'의 구절이 새삼 떠오르게 하는 들판이다.

우리나라는 7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고도성장기였다. 시골에서는 추수해서 겨울에 뒤주(곳간)에 나락을 저장했고, 도회지 사람도 가령 30만원 월급을 타면 10만원 정도는 저축을 하고, 그렇게 10년 모아서 집 한채 장만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발표에 의하면 가계부채가 1000조, 정부와 공공기관부채가 1000조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11월 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말 현재 가계부채는 980조원이고 직전 1년간 개인 가처분 소득은 717조6000억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따라 개인 가처분 소득에 대한 가계부채 비율은 137%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지표의 수치가 높을수록 소득으로 빚을 갚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고, 그만큼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국가부채는 10년 전에 165조에서 현재 500조로, 금융공기업을 제외한 공기업 부채가 5년 전 200조에서 400조를 넘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정부에서 가계부채를 억제하니 그 역작용으로 1,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이 고금리의 대부업체를 찾게 되면서 가계부채에 따른 이자부담이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중산층을 이루는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리해고나 명퇴 등으로 급여가 줄어든 중소기업으로 재취업하거나 퇴직금으로 음식점 등 자영업을 하게 되었다.

재정적자가 심각하고 폭발적으로 늘어난 복지수요를 해결해 보기 위해서 국세청의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세금을 많이 거두려고 하는데, 국세청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1만개 이상, 1년에 100만개 이상의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서 그것마저 여의치가 않다. 대다수의 중산층이 소득이 낮은 계층으로 이동하게 되고, 그들에게 부채가 소득을 크게 상회하고 더 나아가 한 달에 내야하는 고금리의 이자를 그달 소득으로 이겨내지 못할 때 또는 돌려막기도 한계에 부딪치게 될 때, 결국 법원의 파산이나 회생절차에 호소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시계열적으로 우울한 중산층의 라이프사이클이 그려진다. IMF시절보다도 더 혹독한 겨울이 다가온다. 정부, 공기업, 국민 모두가 천자문에 나오는 '가을추(秋), 거둘수(收), 겨울동(冬), 감출장(藏)'의 구절을 환골탈태의 심정으로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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