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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크레용팝과 조용필, 그리고 희망

윤배경 변호사(법무법인 율현)

2:8 법칙이란 것이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메이저 2할이 시장을 선도하고 나머지 8할은 종속된다는 이론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MB 정권 하에서 이 이론은 유용했던 것 같다. 대중가요계에서도 2:8의 법칙은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대형기획사인 SM, YG, JYP로 나뉘어진 3강 구도는 날이 갈수록 난공불락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대 자본을 앞 세운 대형 기획사에서 훈련된 그룹이 소속사의 영향력에 힘입어 인기몰이를 한다는 아이돌 그룹의 흥행 공식이 통념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공식이 깨져 버렸다. 그 중심에는 나이가 좀 된(?) 처자들로 이루어진 5인조 걸 그룹, 크레용 팝(CRAYON POP)이 있었다. 그녀들은 오토바이용 헬멧을 쓰고, 트레이닝 복을 착용한다.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듯 율동을 한다. 그녀들은 배달민족 특유의 개다리 춤을 선보이면서 관객과 시청자에게 외친다. "점핑, 점핑!" "뛰어, 뛰어!" 걸 그룹하면 예쁜 용모, 노출이 과한 의상, 섹시 댄싱을 연상하던 대중들은 충격에 빠졌고 이윽고 열광했다. '팝저씨'라는 30~40대로 구성된 아저씨 팬클럽이 자발적으로 생겼다. 그들은 크레용팝이 출연하는 공연장을 쫓아가고 지나는 길목을 지키며 응원했다. 걸 그룹에 대한 팬들의 충성도가 낮다는 기존의 통계도 무색해졌다. 유투브에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 '빠빠빠(BAR BAR BAR)'를 패러디한 영상이 봇물처럼 터졌다. 이름도 자본도 없는 기획사가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분석했다. 첫째는, 통념의 전복이었다. 걸 그룹은 섹시해야 한다는 컨셉(concept)을 뒤집었다. 크레용 팝은 촌스런 트레이닝 복으로 무장했다. 무대에서 허리와 엉덩이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날리거나 옆차기를 시도한다. 이웃에 사는 약간 괄괄한 언니, 누나 포스 그대로다. 둘째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크레용 팝은 자본이 취약한 기획사로서 대중매체에 노출될 기회를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메이저 기획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방송시장을 뚫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크레용 팝은 길거리에서 시작했다. 대도시 거리, 국군장병 위문 공연 등 가리지 않았다. 스타의 꿈을 가진 젊은 아가씨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대중과 직접 접촉한 것이다. 크레용 팝은 그렇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열기는 인터넷과 SNS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행복감을 전해준다. 그녀들은 "근심도 NO, 걱정도 NO"라고 외친다. 안과 밖 그리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전 국민들에게 일시적이나마 힐링을 제공한다. 영세 기획사가 내놓은 크레용 팝이라는 문화 상품의 성공은 몇몇 거대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우리 문화 시장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 준다.

거대 로펌과 기득권을 가진 소수의 명망가 집단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우리 법조 시장 역시 절치부심하는, 돈 없고 '빽' 없는 젊은 변호사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시민들은 '크레용 팝'을 기다리고 있다. 엄숙함을 버리고 서민들의 옆으로 다가가려는 젊은 패기, IT 능력과 SNS를 활용할 수 있는 홍보능력, 고객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려는 소통의 의지 등을 갖춘 젊은 변호사들을 찾고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선배 변호사들이 기 죽을 필요는 없다. 가왕(歌王) 조용필이 노익장을 과시하며 화려하게 컴백하듯, 초심을 잃지 않고 탁마의 노력을 다 한다면 구세대의 선배들도 멋지게 '바운스(bounce)' 할 기회가 열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요계든 법조계든, 2:8 법칙을 뒤집고 스타가 탄생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희망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