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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두 재판 이야기

백강진 판사(서울고등법원)

지난 10월 21일과 22일 개최된 한미 지재소송컨퍼런스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한국과 미국이 지식재산권 관련 분쟁의 대표주자로 세계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에서 때마침 양국의 법관들이 모여 각국의 소송제도와 현안에 관한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국내외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이 회의의 백미는 마지막 순서인 모의재판이었다. 같은 사안을 대상으로 양국의 항소심 판사와 변호사들이 차례로 각자의 방식에 따른 항소심 모의재판을 진행하였는데, 양국의 재판은 상당한 차이점을 드러냈다.

먼저 재판의 분위기가 달랐다. 한국 재판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재판부는 주어진 시간 내에서 이루어진 소송대리인의 변론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변론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질문하고 답변을 들었으며, 대등한 상대 간의 대화와 같은 형태로 변론이 진행되었다. 한편 미국 재판은 변론이 시작되자마자 재판부의 질문 공세가 폭포수같이 쏟아졌다. 주장 논리의 약점을 지적하고 재판부의 의중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도 많았으며, 소송대리인이 원래 준비한 변론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었다. 모의재판 후 만난 양국 법률가들의 소감을 들어 보니, 한국 청중은 미국 재판의 역동적인 면을 부러워했고, 미국 청중은 한국 재판에서의 충실한 변론기회 보장을 부러워했다.

재판의 결론도 일부 달랐다. 사후심으로서 배심의 사실인정을 존중하여야 하는 미국 재판에서는 쟁점이 사실문제인지를 두고 주로 공방이 벌어졌다. 법률문제로 인정된 일부 쟁점에 대해서만 1심의 판단이 취소되었고, 한 쟁점은 사실문제 여부에 대한 재판부의 의견이 갈려서 소수의견이 덧붙여졌다. 이에 반하여 속심인 한국 재판에서는 전자기록과 시연장비를 통한 상세한 증거의 제시, 설명이 있었고 이러한 증거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심의 결론이 대폭 변경되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분쟁이 빈발하고 있는 현실에서 당사자들의 포럼 선택 문제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모의재판은 충실한 사실인정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재판의 질적 우수성을 잘 드러냈지만, 속심 구조로 말미암아 심리의 집중도와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법리 토론에 충분한 시간이 할애되지 않는 점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미 시간과 비용, 법률가의 자질 등의 측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재판이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심급구조의 합리적인 재편과 세계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균형 잡힌 법률이론체계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자미 히로시 교수는 개화기 서양문명에 대하여 자기중심적인 중체서용(中體西用)을 표방한 중국이나 고유의 정신을 강조하여 화혼양재(和魂洋才)를 내세운 일본과 달리 한국은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주창함으로써 더 국제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국제회의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면서 한국의 재판이 국제적 시각에 맞추어 조금만 더 보완된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가 다국적 소송의 포럼으로 우선 고려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희망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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