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목요일언

헌법재판과 정치 2

김성진 헌법연구관(국제조사연구팀장)

지난 9월 12일자 이 지면을 통해 '헌법재판과 정치'라는 글을 실은 후, 여러 분들의 질문이 있었다. 과연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기관이 어떻게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률을 무효화 할 수 있는 것인지, 즉 헌법재판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물음이었다.

바로 이 문제가 세계 최초의 헌법재판이라는 180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마버리 사건(Marbury v. Madison) 이후 미국에서 200여 년간 계속되어 온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미국 헌법 어디에도 이러한 권한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실질적으로 마버리 사건을 살펴보면, 1789년 설립되어 아직 그 권한이 불확실했던 연방대법원이 행정부, 특히 대통령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기 위해 의회가 만든 법률을 무효화 시켰던 아주 우연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이러한 권한은 50여 년이 지난 1857년까지 다시는 사용되지 않았다. 물론 잘 알려진 대로 그 후 그러한 권한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굳건해졌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의 영향으로 의회절대주의를 근간으로 하였던 영연방국가들 중에서도 헌법적 사법심사권의 도입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1897년 남아공 고등법원은 미국의 마버리 사건을 인용하며 국가 소유 금광의 폐광에 따라 발생하는 정부 피해를 보전해주는 의회 법률을 무효라고 선언한다. 이에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사법부는 이러한 권한을 결코 가진 적이 없으며 가질 수도 없다"는 의회의 비상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해당 법원장을 해임한다.

헌법재판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충격이었다. 600만 유태인에 대한 학살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러한 만행을 저지른 집단이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집권했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전까지 '다수의 의지(majoritarian will)'를 강조하여 선거라는 절차적 정당성에 초점을 맞췄던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있었다. 이에 어떠한 선출된 다수도, 어떤 이름의 정부나 공동체도 뺏어갈 수 없는 보편적 권리로서의 기본권을 상정하고 민주주의를 헌법이라는 내용을 통해 통제하려는 헌법재판이 활성화 되게 된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다. 사형제에 대한, 낙태에 대한,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수많은 가치가 부딪힌다. 자신이 선호하는 가치에 따라 그 결과는 달리 해석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헌법재판이라는 제도를 우리가 왜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헌법재판은 보편적 가치의 문제를 정치적 투표가 아닌 논리의 질과 이성을 통해 검증해 보려는 노력이다. 특히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소수자의 입장에서 말이다. 마치 나치 치하의 유태인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