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서초포럼

법정 Ⅱ

강신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종 대표)

치과의사인 친구가 있습니다. 학창시절에도 가깝게 지냈고, 군 복무를 같은 부대에서 한 인연으로 더욱 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 친구가 승용차를 가지고 있어서 그 승용차를 이용하여 부대 근처의 유적지와 명승지를 유람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친구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군 생활의 낙수(落穗)였습니다. 그가 먼저 전역을 하여 서울에서 개업을 하였고, 얼마 후 저도 전역을 하고 서울에서 법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각자 자기 분야에 일하면서도 몇 달에 한 번씩 만나 회포를 풀고 정을 쌓아갔습니다. 그 친구는 매우 관대하고 이해심이 넓어 저의 모난 처신도 잘 이해하여 주었습니다. 역시 좋은 친구와 교류를 하는 것이 마음에 자양분을 받은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다 제 치아가 문제가 생겨 그 친구에게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경영하는 클리닉에 가서 상담을 하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진찰의자에 누워 발치를 하게 되었고 무서운 드릴링 머신으로 치아를 다듬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가 알던 친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진료를 하는 그 친구는 사석에서와 같이 관대하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부드럽지 않았으며 웃음도 없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의사로 돌아가, 긴장된 표정을 띠고 건조한 목소리로 환자인 저를 문진하고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사석에서 그 친구를 만나 부담 없이 담소를 나누는 경우에도 그 딱딱한 모습이 눈에 어른 거려 가끔 거리감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 인연으로 사적 교분이 있는 재판장이 재판을 하는 법정에 들어가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제가 평소에 알고 있던 분과는 전혀 다른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근엄한 자세, 빈틈을 보이지 않는 말수, 내심을 드러내지 않는 건조한 얼굴, 당사자나 대리인의 주장의 허점을 놓치지 않는 치밀함, 복잡한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예리함, 그리고 양 당사자의 한쪽에 치우지지 않으려는 면밀한 조심성 등을 발견하게 됩니다. 법정 밖에서는 잘 웃고 유머스러운 분이, 법정 안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직업인으로 바뀌게 되나 봅니다. 직업인으로서의 법관은 법정에 들어서면 좋은 재판을 위하여, 긴장감과 압박 속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여기서 바람직한 법관상을 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의 능력을 넘는 일입니다.

다만 변호사인 저는 따뜻한 법정이 좋습니다. 엄정한 법정에 들어서면 긴장감과 냉냉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제가 주장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법조경력 30년인 제가 이럴진대 아직 법조연륜이 짧은 후배들은 어떨까요. 물론 제가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그런데 가끔 훈기가 도는 법정을 만나게 되는 행운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 여유로운 표정, 당사자의 말실수를 이해하고 자기표현 능력이 부족한 증인의 진술을 돕는 재판장의 관대함을 만나게 되는 것이 참 좋습니다. 법정에서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게으른 변호사들에게 "요즘 많이 바쁘신 모양이죠"라고 하며 밝은 표정으로 한번 웃는 모습을 보여 주는 재판장이 너무 좋습니다. 그러한 법정에서 진실이 제대로 발견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직업인으로서의 법관이 생활인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조금 보여준다면, 따뜻한 법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