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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하급심 재판 중계

윤배경 변호사(법무법인 율현)

법원에서 벌어지는 재판을 중계 방송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상업화한 것은 미국의 Court TV(현 Tru TV)다. 리얼리티 쇼(Reality Show) 형식의 효시라고도 할 정도로 일상의 법적 문제를 방송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Court TV가 가장 재미를 본 것은 오 제이 심슨(O.J. Simpson) 사건 때였다. 전직 프로 축구선수였던 심슨은 자기의 전처와 친구를 엽기적으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세기의 재판( Trial of Century)'이라 불리던 이런 이벤트를 언론이 지나칠 리 없었다. 미국 3대 방송사와 CNN이 취재경쟁을 벌였으나,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재판 과정을 생중계한 Court TV였다. 약 8개월의 심리 끝에 배심원단은 1995년 10월 8일 마침내 피고인이 무죄라고 평결하였다. 피고인이 무죄로 풀려나자 일부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재판의 법정 중계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심슨은 과거 각종 방송매체에서 스포츠 해설가로서 유명했는데 그의 인적 네트워크가 가동되었다는 말이 돌았다. 당시 재판의 방송 중계를 허용한 판사 역시 법정에 들어 차 있는 카메라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최근 우리나라 사법부는 모든 재판을 생중계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듯 하다. 대법원은 올해 2월 '대법원에서의 변론에 관한 규칙'을 일부 개정해 3월 21일 국외이송약취 사건의 공개변론을 방송을 통해 중계하도록 조치했다. 대법원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여론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법원 내부에서 하급심재판도 방송과 인터넷 중계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하급심 생중계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재판 과정을 방송하거나 중계함으로써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투명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재판은 원칙적으로 공개된다. 이해관계인은 물론이고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재판의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형사판결문을 비롯한 소송기록도 공개될 예정이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도 재판의 투명성은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나오는 판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이 제어될 수 있으리라는 말도 나온다. 이는 CCTV를 장착해서 판사의 재판 과정을 모니터링 하겠다는 생각에 못지 않게 판사들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으로 들린다. 재판 과정을 방송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주장도 있지만 재판 방송은 미국, 호주 등을 비롯한 영미법 국가와 국제형사재판소 등에 국한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륙법을 계수하거나 고수하고 있는 국가가 재판과정을 방송에 노출시키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하급심을 중계함으로써 나타나는 당사자의 사생활과 인격권의 침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상고심을 다루는 대법원의 재판 과정을 중계하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급심에서는 당사자의 전인격과 생활상이 노출되게 마련이다. 특히 피고인을 대상으로 한 형사사건에서는 피고인의 자라난 과정, 인성, 사건 당시의 상황 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도 지켜지기 어렵다. 과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피고인의 권리가 어디까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인가? 미디어의 위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우리 현실에서 하급심 재판 방송 중계는 사법 영역에 황색 저널리즘이 침투할 자리를 마련해 줄 것 같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