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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법관의 침묵

백강진 부장판사(서울고등법원)

몇 년 전부터 이른바 법관의 막말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법정에서 화를 내고 면박을 주는 등 고압적 태도에서부터 편파적 재판진행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사항들이 거론되고 있다.

운전대만 잡으면 인격이 변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심리, 과학 저널리스트인 톰 밴더빌트가 2008년 '트래픽(Traffic)'이라는 책에서 밝힌 바로는, 이러한 현상은 다른 운전자와의 대화가 차단되고 시선 교환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소통의 부재 상태에서 인간적인 접촉이 사라짐에 따라 발생한다고 한다. 법정이라는 공간 또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인간적 소통을 방해하는 속성을 띠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고 법정에서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법원과 법관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이러한 노력이 법원에 대한 국민의 굳건한 신뢰라는 결실로 나타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울러 주목할 부분은 사회적, 제도적 맥락이다. 법관의 법정 언행에 대한 최근의 빈번한 문제 제기는 법관들이 과거보다 인격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고착되어 있던 전통적 재판진행모델이 사회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 유행하는 갑을(甲乙) 논쟁이나 영화 설국열차의 다양한 객차 칸의 상징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거대 담론으로서의 권력에서 벗어나 미셸 푸꼬가 주장한 일상생활에서의 미세권력을 해체하는 데로 관심을 돌리고 있고,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법정이라는 공간은 밀실에서 광장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우리 소송제도가 법관의 적극적, 후견적 역할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여전히 피고인신문이 증거방법으로 사용되는 등 직권주의 소송구조를 겸유한 우리 형사소송에서 법관은 단순히 당사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는 역할을 넘어 적극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받고 있다. 민사소송에서도 당사자의 예측 가능성 보장과 진실 발견을 위해 법관에게 광범위한 석명지적의무가 부과되어 있으며 적절한 심증의 개시 또한 권장되고 있다.

법관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는 비대칭적인 소통방식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모든 권력이 해체되어 버린다면 사회적 약자의 보호 기능과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까지도 사라질 위험이 있다. 고객서비스의 관점에만 치중하여 현미경과 같은 잣대로 법관의 법정 언행을 감시할 경우 재판절차는 친절하게 주재하되 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내내 침묵하다가 종국 판결로만 응답하려는 법관이 늘어날 것이고, 그 결과 자칫하면 우리는 인간적이고 열정적인 법관을 적어도 법정에서는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플루타르코스는 '윤리론집'에서 '수다(adoleschia)'라는 병의 첫 징후로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현상을 들면서 이러한 병리현상은 '침묵'으로 치유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스 피카르트가 설파하였듯이 그러한 '침묵'은 진실한 언어를 위한 능동적인 토대가 될 때에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